남산편지 459 휠체어 타고 달리는 인생 후반전
70년대 국가대표 축구팀의 간판 수비수로 그라운드를 주름잡던 황재만(53)씨가 ?휠체어 럭비의 전도사?로 나섰습니다. 인생의 황금기인 30대 후반, 척수염 판정을 받고 휠체어에 주저앉은 그가 이제는 한국휠체어럭비협회 준비위원장으로 ?인생의 후반전?을 뜨겁게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는 중동고와 고려대를 나와 청소년축구대표 선수를 거쳐 대학 2학년인 72년 태극마크를 단 당대의 ?철벽 수비수?이었습니다. 문전까지 연결되는 롱 드로잉으로 올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한 때 ‘잘 나가던’ 축구선수에서 장애인으로 바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축구 대표팀의 왼쪽 풀백으로 후회 없는 선수생활을 보냈습니다. 1976년 12월 4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헤딩 결승골을 넣어 2대1로 이겼을 때,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북한과 공동 우승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80년 할렐루야 축구단으로 옮겨 선수로 뛰다, 83년 지도자로 나섰습니다.?
할렐루야 축구단을 이끌고 중남미, 동남아, 러시아까지 누비며 활발한 선교활동을 벌이던 그에게 병마의 그림자가 찾아든 것은 지난 86년이었습니다. 멕시코 월드컵을 찾아 선교활동을 벌이고 귀국한 후 그는 열병을 앓았습니다. ?다리가 불편했지만 선수 때 다친 후유증이라고 생각했죠. 근데 몸이 계속 안 좋았어요. 2년 뒤 척수염 판정을 받았고 90년 무렵 완전히 휠체어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선수시절 172㎝, 72㎏이던 탄탄한 그의 체구는 45㎏까지 떨어졌습니다.
?나는 다시 걸을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아내가 휠체어를 구입하겠는 것도 한사코 말렸죠. 하지만 결국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신앙과 아내의 헌신적인 도움이 없었으면 삶을 쉽게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98년 총감독을 맡았던 할렐루야 축구단이 해체되며 축구계를 떠난 황씨는 금년 초 휠체어 럭비를 접하며 새 희망을 찾았습니다. ?매일 집에서 천장만 보고 지내던 경추마비 장애인들에게 휠체어 럭비는 새로운 삶의 희망입니다. 보세요. 저 격렬한 움직임과 생명력을. 삶을 포기하려 했던 장애인들이 홀로 서고 있습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휠체어 럭비는 농구 코트 규격의 경기장에서 패스를 주고받으며, 공을 가진 선수의 휠체어 바퀴가 엔드라인을 통과하면 득점으로 인정되는 경기로서 각 팀 4명의 선수가 8분씩 4피리어드 경기를 펼칩니다. 현재 휠체어 럭비가 보급된 나라는 30여 개국입니다. 지난 2000년 시드니 장애인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됐습니다. 첫 걸음을 내디딘 한국 휠체어 럭비의 가장 어려운 문제는 장비문제입니다. 경기용 휠체어 1대의 가격이 무려 600여만 원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황씨는 ?럭비용 휠체어 100대만 지원받을 수 있다면 2008년 베이징올림픽 무대의 정상에 태극기를 휘날리겠다?고 그의 포부를 이야기했습니다.(2004.07.05 조선일보 참조)
불행한 일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닥쳤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그 원인을 찾지 못할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너무나 억울하여 한탄하며 스스로를 포기하는 삶을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새로운 소망을 간직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불행을 이기는 것은 그가 갖고 있는 학문이나 지식이나 육체적인 힘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자신을 믿는 신념,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를 위한 신뢰, 그리고 하나님을 우러러 보는 신앙으로 구성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신념이나 신뢰는 절대자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온전한 것이 된다는 점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 남산편지가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1권: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보내는 남산편지(겨자씨 출판사) 전화: 02-2253-9169
2권: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보내는 편지(대명출판사) 전화:053-621-8991
* 정충영교수 최근 저서: 사이버교회, 어떻게 할 것인가?(겨자씨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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