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편지 483 맨발의 할아버지
가슴팍에는 종이판을 걸고, 머리에 쓴 모자에는 손으로 적은 문구를 꽂은 기이한 모습으로, 30여 년을 한결같이, 엄동설한에도 맨발로 다녔던 노인. 지하철 통로를 따라 걸어가면서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외치는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웃는 얼굴 웃는 안광, 김구 주석 꼭 닮았어, 축하합니다!”
“미스 코리아 유관순! 미스터 코리아 안중근! Why two Korea?”
사람들은 한낱 우스갯거리로 여겨 무시하거나 킥킥거리며 웃었고, 통일이 되면 신을 신는다는 말에는 모두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러나 최춘선 할아버지는 광기(狂氣)라고 하기엔 너무나 위엄 이 있었고 힘찬 노인이었습니다. 아마 우리 중에는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다 이 맨발 노인을 만난 분 들이 많을 것입니다.
프리랜서 PD 김우현씨가 최춘선 할아버지의 거칠고 더러운 맨발에 눈길을 주기 시작한 것은 1995년 초여름이었다. 괴이한 행색을 한 채 지하철에서 알아듣기 힘든 언어로 기독교 복음(福音)을 전하는 할아버지에게 자신도 모르게 끌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한겨울에도 맨발로 거리를 오가는 할아버지를 광신도이거나 미친 사람 취급하곤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남북통일이 되기 전엔 절대로 신발 안 신는다”고 말했습니다.
김우현 PD는 기적과도 같은 계속적인 만남들을 통해 알게 된 놀라운 사실들은 그를 놀라게 했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 댁을 찾아간 PD 김우현씨는 그 할아버지가 번듯한 주택에 살고 있었으며 5남매를 목사와 교수 등으로 길러낸 분이었습니다. 젊을 적에 동경에 유학하였고 5개 국어를 하는 수재였으며 김구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 분이었습니다. 현재 여러 동네로 나뉜 김포 일대가 전부 그 노인의 소유였고 60년대에는 자가용 여러 대를 굴릴 정도로 큰 부자였습니다. “세상에 부러운 사람이 없고, 무서운 사람이 없고, 보기 싫은 사람이 없다”고 할아버지는 수줍은 듯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2001년 9월 82세를 일기로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분단 현실이 부끄럽다며 일체의 보상을 사양했던 할아버지를 위해 자손들은 대전국립묘지 제2 애국지사묘역에 모셨습니다. PD 김우현씨는 최근 할아버지의 동영상을 담은 DVD ‘팔복’과 못다 한 이야기를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이름의 책으로 펴냈습니다. 동영상은 인터넷과 전국의 교회를 통해 감동의 물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아마도 세상의 무지와 무관심 속에 ‘저 낮은 곳’에 머물다 간 ‘ 맨발의 성자(聖者)’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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