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H. Park P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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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벧엘
작성일 2013-09-11 (수) 19:28
홈페이지 http://www.bethel.kr
ㆍ추천: 0  ㆍ조회: 3492      
성지소개(이집트) - 준비중 입니다.
 
 
◈수도 : 카이로 (Cairo, 약1600만명) ◈인구 : 6,650만명 (2000년 기준)◈면적 : 1,002,000㎢ (한국의 약5배,국토의 95% 사막)◈주요도시 : 알렉산드리아,기자,멤피스,룩소르등◈주요민족 : 아랍인(98%),베드윈인,누비아인,◈주요언어 : 아랍어◈종교 : 회교(93%),기독교(7%)개관이집트만큼 풍부하고, 잘 보존된 과거를 소유하고 있는 국가도 드물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같은 이집트 유산은 고대 유물의 상징이다. 문명은 5,000년이 지났어도, 현대의 여행자들에게 이집트는 박물관 이상의 의미를 가져다 준다. 이집트의 국민들은 이집트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게 우호적이고, 친절하게 대해준다. 관광자의 대부분은 피라미드를 보러 이집트를 가겠지만, 그 유물들 만큼이나 매혹적인 이집트인들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돌아오게 될 것이다. 현대 이집트는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요, 동서양과 신구의 교차로로서 인류문명의 보고이다. 지리이집트(Arab Republic of Egypt)는 아프리카의 북동쪽에 위치하며, 사하라 사막 안에 놓여 있다. 북으로는 지중해에 접하고, 남쪽으로는 수단에, 서쪽으로는 리비아에 동쪽으로는 이스라엘과 아카바만(the Gulf of Aqaba)과 홍해를 접하고 있다. 이 지리적 위치로 말미암아 이집트는 고대 부터 세계 무역의 핵심이 되었다. 이집트는 100만㎢(386,100평방 마일)을 차지하며, 스페인의 두배, 한반도의 4.5배의 크기인데 국토의 90%가 사막이다. 나일강은 서쪽 사막의 모래 언덕과 산악지역인 동쪽 사막을 가로 지른다. 이 두 사막 지역과 나일 언덕 그리고 시나이 반도는 이집트의 주요 네 지역이다. 서쪽 리비아 사막나일 서쪽 암벽, 모래와 고원이 서쪽으로 뻗어 영토의 2/3 이상을 차지한다. 서쪽 사막지역은 외부 관계시설이 없어서 유수가 중앙 분지에 모여 비가오면 일시적인 호수가 형성되고, 건조하면 소금 침전물을 남긴다.동쪽 아라비아 사막남쪽으로는, 가파르고 절벽투성이의 사막이 홍해로 닿아있다. 서쪽과 북쪽으로는, 산악이 고원을 양보한다.양쪽 모두 와디(Wadis)라고 불 리는 옛날 관계 시설에 의해 교차된다. 나일 계곡(Nile Valley)나일은 세 지류에서 발원한다. 흰 나일은 우간다의 빅토리아호에서 흘러가 하르툼(Khartoum, 수단의 수도)에 청나일이 합류하기까지 수단의 여러 초지를 거친다. 청나일은 에디오피아의 고원지대에서 시작된다. 하르툼에서 나일은 사암과 화강암 협곡으로 흘러들어가서 여러개의 폭포가 된다. 여기에서 나일은 아스완댐에 들어가기전 마지막 주요 지류인 아트바라와 합류된다.시나이 반도(Sinai Peninsula)시나이의 61,000 평방 킬로미터는 홍해와 호수군, 수에즈를 이루는 수로에 의해 분리가 된다. 이 작은 소대륙이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연결한다. 전체면적의 6%를 차지하는 동쪽 산악 사막지역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사회, 문화전체 인구는 64,824,466명 (1997.7월)이며, 이중 94%가 수니파 회교도이고, 6%가 기독교이다. 나세르에 의해 1953년부터 공화제가 채택되어, 1971년에 이슬람교를 국교로 한 민주적 사회주의 국가를 내새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식언어는 아랍어이며, 영어와 불어도 통용된다. 정식 국명은 이집트 아랍 공화국(Arab Republic of Egypt)기후카이로를 비롯한 내륙이 아열대 기후, 지중해 연안이 지중해성 기후이다. 알렉산드리아가 연간 강수량 190mm, 카이로는 25mm 정도이다. 기온은 여름에 사막에서 37~48℃, 온화한 지중해 연안에서도 32℃에 이른다. 겨울에는 대체로 따뜻한 편이지만, 바람이 불면 매우 쌀쌀하다. 특히, 심한 모래바람이 부는 때도 드물지 않은 편인데 이런 때에는 항공기의 운항이 중단되기도 한다.
 
 
 
1 홍해 후르가다
 
후르가다(Hurghada)는 홍해 연안에 위치한 유명한 휴양도시이자,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해양레포츠의 메카다. 주 종목은 스쿠버 다이빙과 스노클링!!
 
 
 
후르가다는 카이로에서 버스로 6시간, 비행기로 1시간 & 룩소에서 버스로 4시간 이동하면 도착할 수 있다
 
 
 
 
 
2 카이로
 
아랍어로 승리를 뜻하는 카이로는 이집트의 수도이자 아프리카에서도 손꼽히는 가장 큰 도시이다. 헤롯왕의 재난을 피하기 위해 바구니에 실려 나일강을 떠내려온 모세가 빨래하는 여인에 의해 건져진 북 이집트의 삼각주 어귀 게지라섬에서 나일강의 왼쪽 언덕까지 뻗쳐있으며, 6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수많은 이집트 문명의 수도로서 오랫동안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곳에서 이집트 문화 중심권에서 카이로는 미스르(Misr)라는 아랍이름으로 불리우며, 대도시 카이로는 3개의 행정구역으로 뻗어있다. 동쪽 언덕은 알 칼리오비야(Al Qalyobiyah Governorate)의 행정구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안은 알 지자(Al Jizah)알 칼리오비야에 걸쳐있다. 카이로는 전통과 동서의 영향, 고대와 현대가 잘 조화된 도시이다. 그러나 이 도시는 늘어만 가는 이집트의 가난과 급격한 인구팽창으로 인한 문제와 쇄락해만가는 사회기관 시설을 동시에 보여주기도 한다. 현재의 구카이로(Old Cairo, 현지어로 Misr al)는 이전 바빌론이었으며, 로마 비잔틴 시대에 형성된 고대 이집트의 수도 멤피스는 카이로 남쪽 교외에 해당한다.
 
 
 
시가의 중앙을 꿰뚫고 흐르는 나일강은 이집트 문명을 꽃피운 원천이었으며, 지금도 변함없이 이집트의 젖줄이기도 하다.
 
 
 
연간 강우량은 30mm 미만, 인구는 1,600만이 되는 카이로의 하늘은 언제나 푸르다.
 
 
 
 
 
3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라아는 지중해에 닿아있어 지중해의 빛나는 진주이자 그 문화와 유산을 전세계에 비추는 햇불이다.
 
 
 
인구는 약 220만으로 이집트에서 두번째로 큰도시로 이집트의 주요 항구이다. 원래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의 건축가 디노크레테스(BC 332~331)가 알렉산드더 대왕의 명으로 오래된 마을, 라코티스(Rhakotis)에 건설하였다. 알렉산더 대왕의 불멸의 이름을 딴 이 도시는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인 중심지로 급격히 번창하였고, 그 흔적이 오늘날까지 남아 전해지고 있다. 프톨레마이우스 왕조의 수도로서 수많은 유적지를 가지고 있다. 이곳에는 세계7대불가사의 중의 하나였던 등대와 도서관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 해변을 따라서 클레오파트라와 줄리어스 시저와 마크 안토니 그리고 옥타비안의 비극이 연출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알렉산드리아는 나일 델타의 북서쪽에 있으며, 지중해와 마리우트 호수 사이에 좁게 걸쳐있다. 알렉산드리아는 2개의 주요 고속도로와 철도 노선을 통해 바로 수도 카이로로 연결된다. 이곳은겨울날씨가 따듯하고 지중해를 따라 아부키르 (abu Qir)에서 동쪽의 알 알라메인과 서쪽으로 시디 압둘라만까지 140km를 뻗치는 하얀 모래가 있는해변의 아름다움 때문에 중동지방의 가장 유명한 피서지로서 알려져 있다.
 
 
 
 
 
4 아스완
 
이집트 남동부 아스완주의 주도로 약 100만의 인구를 가지며, 예로부터 주변의 수단과 에티오피아의 상업, 교통 중심지서의 역할을 하였다.
 
 
 
1898년~1912년에 영국인들에 의해 아스완댐이 건설된 이후 많은 유적들의 침수가 있었고, 이 댐이 관개와 홍수조절을 위한 능력이 떨어지자 이집트 정부는 좀 더 완벽한 홍수통제를 위해 1971년에 아스완 하이댐을 건설하였다. 이 때문에 다시 수위가 높아져서 많은 유적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아스완은 이집트 남부의 태양의 도시이자, 고대 룩스르에서 남쪽으로 81마일 떨어진 아프리카 풍의 변경도시였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곳을 씨에네(Syene)라고 불렀으며, 나일강의 아름다음을 걸어서 감상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곳의 삶은 느리고 느긋하다.
 
 
 
아스완에 이르러 황색의 사막과 화강암 바위 사위로 흘러가는 나일강은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해안도로를 따라 거닐며, 강에 떠 있는 보트를 구경하거나 아니면 하늘 높이 매달린 돗대를 보거나, 강가의 수상 레스토랑에서 누비아인들의 음악을 들으며 신선한 생선을 먹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해안도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문화센터(Cultral Center)에서 누비아의 전통 음악과 춤을 매일 공연하니 이곳을 들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곳은 댐으로 인해 유적이 수몰되기 전에는 관광의 도시로서의 역할을 다했지만 지금은 댐을 이용한 화학비료 등의 공업이 잘 발달되어 있다. 이곳에서 누비아 박물관에서 수몰이전의 유물들을 구경할 수도 있고, 근처의 필라에섬의 이시스의 신전을 구경할 수 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나세르 호수를 따라 원래의 장소에서 200m 정도 이전된 람세스 II세의 아부심벨의 유적지를 들 수 있다.
 
 
 
 
 
5 아부심벨
 
아부심벨은 아스완의 남쪽 28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19왕조의 람세스 2세가 고대 누비아 지방에 건립한 신전이다. 이를 통해 람세스는 자신의 권력과 신성을 과시하려 하였다. 입구에 있는 높이 20미터의 거대한 네개의 좌상이 있다. 입구 왼쪽의 머리와 토르소는 고대 지진으로 인해 훼손되었다. 이 사원은 태양신을 숭배하여 동쪽을 향해 지어졌으며, 사원은 1년에 두번씩 햇빛이 신전 안으로 비춰들도록 설계되었다.
 
 
 
신전은 나일강 위의 절벽에 사암을 깍아서 만들었으며, 1960년초 아스완 하이댐이 건설되었을 때, 유네스코가 기금을 조성하여 이 사원이 깊이 60m에 이르는 나세르 호수에 수몰되지 않도록 정교하게 3등분되어 1963년부터 66년까지 약 70m 정도 위로 원형 그대로 옮겨졌다.
 
 
 
사원은 크게 람세스를 위한 대신전과 그의 네페르테리 왕비를 위한 소신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6 시나이 반도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땅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을 광야를 헤매며 생활한 무대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내산도 이곳 시나이 반도에 있다. 이슬람교의 코란에서도 마호메트가 시내산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 언급되어 있어 사실상 시나이 반도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모세가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통과하고 아라비아의 유목민인 아말렉족과 싸움을 벌인 곳이며, 이스라엘 자손들이 40년동안 유랑하며 하나님의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받던 곳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육상 통로 일뿐 아니라 지중해 저편에 있는 유럽 대륙이 시내 반도를 거쳐서 홍해와 인도양 뱃길을 따라 동양으로 갈 수 있는 교량이 되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옛부터 이 땅은 문화교류와 통상교통로써 아주 중요한 땅이었던 관계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그 중에서도 모세에 의한 이스라엘 민족과 출애굽 사건이 가장 큰 사건이며 또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현대의 시나이 반도 내의 아스팔트 길과 전통적으로 말하는 출애굽의 길은 꼭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으나 시나이 반도와 나일 계곡 (아라비아 사막)을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의 해저 터널을 지나서 15 Km 정도 남행하면 대추 야자나무가 무성한 조그만 오아시스가 하나 나오는데 이곳을 아랍어로 오윤 무사(OYUON MUSA)라고 부른다. 여기가 성서상의 마라(출 15:23)이다.
 
여기서 계속 수에즈만 (홍해)를 따라 남행하여 라스 사라팁이라는 삼거리를 지나 내륙으로 뻗어 있는 와디 파이란 (WADI FAIRAN) 계곡을 계속 따라 가면 성 캐더린 수도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라스 사라팁에서 우측길로 60 Km 정도 더 가면 엘드어(ELTUR)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가 엘림(출15:27)으로 간주되는 장소로 종려나무 70여주와 12개의 샘이 있고 비잔틴 시대의 찬란했던 흔적은 간데 없으나 4세기 때 건립된 조그만 교회가 하나 남아 있다.
 
 
 
다시 삼거리에서 성 캐더린으로 가는 길인 와디 파이란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파이란 오아시스(FAIRNA)에 도착한다. 이 오아시스가 성서의 르비딤(REPHIDIM)인데 이곳이 이스라엘이 출애굽후 처음으로 아말렉 족(AMALEKITES)와 여호수아 (JOSHUA)가 전쟁을 치룬 곳이다.(출 17:8-16) 이 계곡을 와디 히브린 (WADI HEBRAN)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히브리(유태)가 지나 갔다는 뜻이다.
 
 
 
와디 엘세이크 (WADI EL SHEIKH)로 들어가 50km 정도 가면 성 캐더린 수도원이 나온다. 이 수도원 자리가 호렙산 아래인데 모세가 하나님을 처음 만난 장소이다.(출 3:1) 모세의 출애굽 600년 후에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야 (ELIJAH)가 하나님과 대화하였다(왕상 19:9-18)는 성산 (The Holy Mountain)인 호렙산 정상에는 기원 4세기 경에 세워졌던 조그만 교회 자리에 1934년에 다시 세운 성 삼위일체 교회가 있다.
 
 
 
시내 반도 북쪽 지중해 연안은 이집트-이스라엘 국경인 라파에서 수에즈 운하의 콴타라 까지 펼쳐지는 모래 벌판이 돌산들이 즐비한 남쪽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이곳이 고대로부터 아프리카, 아시아 통상로로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모세 출애굽 사건 후 1200년 후에 아기 예수님과 그의 가족이 이 길을 통해서 평화의 땅을 찾아 피난하였다. (마 2:13-15)
 
 
 
시나이 반도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로 이곳은 세계의 화약고라고 일컬어지도록 세계의 주요 분쟁지역이 되었다.56년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한 이집트에 반발하여 수에즈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를 점령하였고, 1967년 6일전쟁(제3차중동전쟁)이래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이 계속되었다. 73년 시나이반도 수복을 위해 아랍연합군에 의해 "욤 키프르 전쟁"으로 불리는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였고, 결국 이집트의 공격은 수포로 돌아가 탈환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974부터 1975년 병력 분리협정에 따라 연간 약 500만t의 산유량을 내는 유전지대를 포함한 반도의 일부가 이집트령으로 되돌아갔다.
 
그 후 1977년 11월 이집트 대통령 사다트의 이스라엘 방문과 1978년 9월 카터 미국 대통령이 주선한 캠프데이비드 회담을 통해 시나이반도를 다시 양도하게 되고 1979년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이스라엘은 점령지인 시나이반도에서 군대를 단계적으로 철수하게된다. 결국 1982년 4월에야 시나이반도가 완전한 이집트의 영토가 되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전쟁으로 인한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내산과 사막의 오아시스 파이란에서 성캐더린 수도원, 마라의 샘까지 이곳 시나이 반도에는 출애급의 유명한 경로이므로 성지에 관련된 관광지가 여행객의 관심을 끄는 곳이다.
 
 
 
 
 
7 수에즈
 
이집트는 인구 6천2백만 명에 97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97년 기준 1천2백달러. 연평균 40억달러 수출에 1백 40억 달러를 수입, 무역적자가 적지 않으며 이 적자를 연간 60억~80억 달러의 관광수입과 수에즈운하 수입,외국 원조 등으로 메우고 있다. 이처럼 이집트에서 수에즈가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최초의 운하는 기원전 2100년에 계획되어 네코가 지중해와 연결 공사를 시작하여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중단 하였고 그 후 기원전 500년경 다리우스 1세가 홍해와 대염 호수(Great Bitter Lakes)를 거쳐 부바스티스(Bubastis)의 나일강과 연결하는데 성공했다.
 
 
 
이 수로는 7세기 아랍의 상인들이 이집트의 농산물을 실어 가는데 중요한 교통로가 되어 백여년 동안 사용되다가 회교 내분으로 수로를 이용한 곡물 운반이 중단되자 운하는 폐기되었다.
 
 
 
1798년 나폴레옹이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수석 기사의 계산 착오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주 카이로 프랑스 영사였던 페르디난드에 의해 1859년 공사가 재개되었으며, 그로부터 10년 후인 1869년 11월에 총 길이 161 Km의 운하가 개통되었다.
 
 
 
1952년 군사혁명으로 집권한 대통령 압델 나세르에 의해 1956년 7월 수에즈 운하 회사를 국유화하였고, 기득권을 상실한 영국과 프랑스는 군대를 동원하여 강점 하는 등 분쟁이 그치지 않았다. 그 후 1967년 6일 전쟁으로 운하가 폐쇄되었다가, 1973년 사다트 대통령의 시나이 반도 탈환과 더불어, 이 운하는 이집트 정부의 관리하에 폐쇄 8년만인 1975년 재개통되었다.
 
 
 
하루 평균 100여 척의 선박이 이용하고 있으며 전세계 물동량의 14%가 이 운하를 통과하고 있으며, 통과 소요시간은 약 15시간이 걸린다. 운하의 폭은 365미터, 평균 수심은 20m인데, 교통량이 늘어남에 따라 꾸준한 준설 확장을 계속하고 있고, 현재 운하의 길이는 173 Km에 달한다.
 
 
 
이 운하를 건너 시나이 반도로 들어가는 연결 지점은 4곳의 나루터와 한 개의 해저 터널이 있는데 이 터널은 진입로를 포함하여 총 연장 4km이다.
 
 
 
운하의 항구는 홍해쪽이 수에즈이고 지중해 쪽에는 포트사이드이다.
 
 
 
 
 
8 멤피스
 
고대 이집트의 도시로 나일강 서안에 위치하며, 오늘날 카이로 남쪽 25 km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멤피스는 기원 전 3500년 전 메네스에 의해 건립된 통일 이집트 만큼이나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당시는 남북 이집트의 행정적인 중심도시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이 당시에 멤피스는 나일 델타의 지정학적인 정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멤피스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제국도시로 기록되고 있다. 고대 이집트 왕국에서 멤피스는 이집트의 수도였고, 멤피스의 북쪽에 있는 네크로폴리스는 기자와 사카라와 관련된 인상적인 유적을 남겼다. 제25왕조에 이르러 멤피스는 다시 한번 중요한 도시가 되는데, 이 시기의 수 많은 유적들이 남아있다.
 
 
 
카이로에서 택시를 타고 사카라와 멤피스를 둘러볼 수 있다. 멤피스는 상,하 이집트를 처음 통일한 메네스 왕이 건설했던 주요 도시의 하나였지만, 지금은 폐허로 변해 몇몇 유적만 남아 있다.
 
 
 
 
 
9 룩소
 
룩소는 카이로의 남쪽에 위치하며 비행기로 2시간, 열차로는 12시간 정도 소요되는 먼 거리이다. 고대 이집트 중왕국의 수도 테베의 일부인 룩소는 최전성기 1500 B.C.에는 인구가 1천만명이 넘는 대도시로 전해지며, 호머의 '일리아드'에도 그 화려함이 묘사돼 있다. 이곳에 그 유명한 카르낙 신전과 룩소 신전이 거대하게 그 장엄함을 뽐내고 있으며 오벨리스크가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다. 룩소 신전의 오벨리스크 둘중 하나는 나폴레옹 침공시 프랑스로 옮겨져 현재는 파리의 콩코드광장에 있다.
 
 
 
물론 고대이집트의 많은 유물들은 콩코드 광장만이 아니라 유럽곳곳에 흩어져있어 룩소는 폐허가 된듯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당시의 위용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의 규모는 여전하다.
 
 
 
룩소는 나일강에 의해 동서로 나눠진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태양이 뜨는 나일강 동쪽에 신전을 지었고, 태양이 지는 서쪽은 주로 묘지나 제전 등을 지었다. 따라서 나일강 서쪽은 사자(死者)의 도시, 네크로폴리스(necropolis)이며 이곳에 그 유명한 왕과 여왕 귀족들의 무덤이 있는 거대한 계곡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피라미드 시대 다음인 1580-1085 B.C.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다. 도굴 방지를 위해 깎아지른 듯한 암벽 위에 조그만 구멍을 파고 그 지하에 미로(迷路)로 연결된 보물 창고, 분묘 등이 있고 바위 표면을 뚫어 신전을 지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왕의 묘는 64기가 발견되었고 그중 9기만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투탕카멘의 영면을 지켜볼 수 있으며, 그밖에 투트모스 3세, 세티, 람세스 3, 6, 9세의 무덤을 우리는 만나 볼 수 있다. 계곡을 달리하면 여왕의 무덤, 귀족 무덤, 장인(匠人)무덤 등이 있고, 합셰수트 장제전, 멤논의 거상(Colossi of Memnon)등이 뜨거운 룩소 땅가운데 남아있다.
 
 
 
왕릉을 관람하고 내려오면서 규모는 작지만 화려한 벽화로 장식된 귀족 무덤을 볼 수 있고, 계곡 너머에서 여왕의 무덤과 장인의 무덤들을 관람할 수 있다. 귀족 무덤에서 '델 엘 메디나'(왕들의 계곡을 건설한 노동자 마을)를 지나면 '합셰수트 장제전'(Deir el Bahari)을 만날 수 있다. 여왕 하트셉수트(Hatshepsut)는 남편 투트모스 2세가 죽은 후 나이 어린 투트메스 3세를 섭정했으며 후에 스스로 파라오가 되었다. 이 장제전은 여왕의 시아버지 투트모스 1세의 부활과 그녀 자신의 부활을 기리며 건립된 것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거대한 제전 중 하나이다. 15-16세기에는 그리스 교도들의 교회로 이용되었고, 여왕의 탄생 이야기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장제전을 뒤로하고 나일강 쪽으로 더 내려오면 폐허가 된 두 개의 거상(巨像)이 나란히 앉아 있는 데 이것이 유명한 멤논의 거상이다. 이는 아메노피스 3세가 1411-1375 B.C.에 세운 것으로 높이가 20m에 달하는 의자에 앉은 모습을 한 거대한 스핑크스(sphinx)이다.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으리 만큼 떨어져 나갔고, 거상 뒤에 있었다는 신전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흔적도 찾아 볼 수 없다.
 
대부분 왕릉은 도굴꾼들에게 약탈 당하고 유일하게 남은 것이 투탕카멘의 무덤이다.
 
 
 
뜨겁고 황량한 가운데 유유히 흐르는 나일강 사이로 우리는 3천여전의 화려한 풍경은 상상해 내기 어렵지만 흘러간 역사가운데 룩소는 그렇게 오늘도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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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정원 무덤(Garden Tomb) bethel 2015-03-13 3535
33 성지소개(이탈리아) - 준비중 입니다. 벧엘 2013-09-11 3920
32 성지소개(요르단) - 준비중 입니다. 벧엘 2013-09-11 3841
31 성지소개(시리아) - 준비중 입니다. 벧엘 2013-09-11 3197
30 성지소개(레바논) - 준비중 입니다. 벧엘 2013-09-11 3145
29 성지소개(이집트) - 준비중 입니다. 벧엘 2013-09-11 3492
28 성지소개(터키)- 준비중 입니다. 벧엘 2013-09-11 3925
27 카파도키아(괴뢰매) bethel 5297
26 갈멜산- 준비중 입니다. bethel 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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