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첫 '일치 기도회' 성공 개최 이후 … 부산 기독교계 변화 조짐

 


지난 19일 천주교 부산교구 중앙주교좌성당서 열린 '2010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회'(본보 20일자 18면 보도)의 여운이 오래 갈 것 같다.

△일치 기도회, 부산서 처음 열려=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총무 권오성 목사는 "새해 부산에서의 이 은혜로운 기도 모임이 3년 뒤 한국교회의 거듭남의 발판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3년 뒤 한국교회의 거듭남'은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를 지칭하는 것.

부산 개신교인 반대 여론 속 각성 잇따라

"다원주의와 무관" 실체 홍보 나서기로

윤종모 주교·원형은 목사 "대화의 장 마련"

한국천주교주교회의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함께 주로 서울서 열어왔던 일치 기도회가 처음으로 부산서 열린 계기는 단순했다. 기도회 참여 교단 중 하나인 성공회 한국관구장인 윤종모 주교가 부산교구장으로 있다는 이유로 천주교주교회의의 김희중 대주교가 권 목사에게 부산 모임을 제안했던 것이다. 권 목사는 흔쾌히 받아들였고, 천주교 부산교구가 다시 이를 수용함으로써 부산 기도회가 성사됐다.

김 대주교의 제안에 권 목사가 흔쾌히 응했던 것은 WCC 부산 총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한국 교회가 부산을 주목하게 만들고, 부산의 교인들에게는 총회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는 것이다.

권 목사의 그런 애씀은 WCC 부산 총회를 보는 한국 교계의 여론이 순탄치 않은 데 따른 것이다. 최근 부산의 한 교계 신문이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부산지역 개신교인 중 70% 이상이 WCC 총회 부산 유치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왔다.

고신이나 예장 합동 등 일부 교단과 한기총 등의 단체가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어, 일부에서는 현실적으로 부산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 실정이다.

△'WCC 총회' 부산 개최 반대 의견도=개신교 일부 교단이나 단체가 WCC 총회 유치를 반대하는 것은 WCC의 정체성에 의구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하는 등 이념적으로나 교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의 그런 인식은 꽤 오래 된 것인데, 1950년대 말 개신교 최대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가 WCC에 긍정적인 '통합' 교단과 부정적인 '합동' 교단으로 갈라서기도 했다.

부산에서 열리는 그리스도교 최대 행사를 정작 부산 교인 다수가 반대하는 현실은 안타까운 것인데, 권 목사는 "WCC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일치 기도회가 지역 교인들이 WCC를 바로 알리는 데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일치 기도회 이후 교계 움직임 달라져=실제로 부산에서의 일치 기도회는 지역 교인들에게 일정한 자극이 되고 있다. 성공회 윤종모 주교는 "냉전 논리 일색이던 5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지금 사회는 성숙돼 있지 않느냐"며 "교회도 그런 성숙된 사회의 흐름에 맞춰 달라져야 한다. WCC 총회의 의미를 알리는 대화의 장을 성공회 차원서 적극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서의 일치 기도회 이후 WCC 총회를 알리기 위한 교계의 움직임이 한층 빨라지고 있다. 일치 기도회에 참석했던 부산기독교교회협의회 안하원 목사는 협의회 내에 선교훈련원을 별도로 만들어 그를 통해 WCC를 알리는 장으로 삼겠다고 했다. "짐작건대 부산 교인들 대부분은 WCC가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고 막연히 반대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게 안 목사의 생각이다.

예장 통합 부산 동노회 소속인 원형은 목사와 영남신학대학교 박성원 교수 등은 지역 교인들과 힘을 합쳐 WCC 부산 총회를 준비하는 모임까지 구상하고 있다. WCC 중앙위원으로 있는 박 교수는 WCC의 실체부터 바로 알려야 한다고 했다.

지난 1월 현재 전 세계 140개국 349개의 개신교단과 정교회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고, 소속 교인수가 5억8천만 명. 로마 가톨릭은 정식 회원교단으로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WCC의 '신앙과 직제 위원회'에 정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같은 세계 최대 교회연합기구가 정작 한국에서만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박 교수의 한탄이다.

△"WCC 총회는 기독교올림픽"=그는 "WCC 총회는 7년 혹은 8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 최고 정책결정 기구로 줄잡아 5천여 명이 참여하는 가히 기독교올림픽이다. 대단한 행사가 한국, 특히 부산에서 열리는데 어떻게 무심할 수 있겠나"며 각 교회의 각성을 촉구했다.

박 교수는 "WCC는 교회 연합체기 때문에 특정한 이념도 지향한 적이 없고, 종교간 교리를 뒤섞는 다원주의와도 무관하다"며 WCC의 존재 가치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했다. "분열만 해 오던 교회가 반성하고 하나되기 위한 에큐메니컬 운동을 2000여년 만에 시작했는데, 그 운동의 정점에 WCC가 있다"는 것이다.

원형은 목사는 WCC 총회를 둘러싼 현 상황을 간단히 정리했다. 한국 또는 부산 교회라는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 "WCC 총회가 WCC만의 것도 아니고 서울 교회들만의 잔치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교회가 하나로 즐겨야 하는 신앙 축제다. 이념과 지역을 떠나 그 속에 참여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2010년 부산 기도회에서 심어진 일치의 작은 씨앗이 2013년 WCC 부산 총회에서 열매 맺을 수 있을지 기대해 볼 일이다.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