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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수 서약서 제도는 중요한가?
신앙공동체의 신학적 정체성은 목회자와 신학자를 배출하는 신학교가 어떤 종류의 신학을 가르치는가에 달려 있다. 교회가 신앙하고 고백하는 것들은 신학자들에 의해 신학화 되고, 신학교가 가르치는 신학은 교회에서 신앙화 된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의 생명력과 사활은 신학교수들의 사상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낙타가 사막의 텐트 틈바구니에 코를 집어넣으면 그 다음에는 머리를 집어넣는다. 점차 비집고 들어가 텐트를 박살낸다. 교회의 변질과 좌경화는 현대주의 신학사상에 “쬐끔” 문을 열어 준 것에서 시작한다. 적은 누룩이 온 떡덩이에 퍼지는 것같이, 교회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신사조는 다양성을 수용하는 작은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온다. 학문의 영역이라는 미명으로 열어놓은 좁은 문으로 들어와 교회를 황폐화시킨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기독교의 중추적인 도리를 부정하는 지경에 이른 신학교와 교회가 하나둘이 아니다. 중국 지하교회 지도자로 일하다가 감옥에서 탈출한 윈(雲) 형제가 독일교회를 방문하고서 내뱉은 말은 “죽은 교회”였다. 유럽의 텅 빈 교회당과 추풍낙엽처럼 교인수가 감소되고 있는 미국의 주류 교회들은 낙타의 텐트 뒤집기 비유가 공공연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에큐메니칼운동과 다원주의 문제는 따지고 보면 성경관으로 귀착된다. 자유주의 신학과 신신학을 지향하는 교회들과 신학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포용주의자들은 초자연적 성경관을 거부하고 자연주의적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노선, 전통 안에 있다. 성경의 신적 권위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다. 비정통신학의 성경관을 자신의 것으로 천명하는 사람은 다원주의적 에큐메니칼운동을 수용하는 것이 아주 쉽다.

미국북장로교회의 좌경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중도파 인사들(찰스 어드만, 로스 스티븐슨, 로버트 스피어)은 정통신학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자유주의 신학에 관용적이며, 프린스톤신학이 제시한 성경관을 수용하지 않았다. 성경무오성, 완전영감, 유기적 영감을 거부했다. 그들이 교회의 신앙고백적 정박지를 무시한 교파통합, 교회연합, 일치운동에 열성적이었던 것은 탈정통적 성경관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의 신학적 정체성 유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관이다. 성경의 영감교리, 곧 무오성, 완전영감, 유기적 영감에 대한 고백이다. 오번선언서(1924)가 반발한 첫 번째 조항은 성경관이었다. 전통적 개혁주의 성경관이 부정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속죄사역, 육체부활, 초자연적 능력을 부정하는 단계로 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내리 잘못 끼워지게 되듯이, 성경관이 무너지면 나머지 교리는 내리막길에 서게 된다. 5년이 걸리든지 50년이 걸리든지 기독교의 나머지 중추적인 도리들을 포기하게 된다.

정통 기독교 신학을 지향하는 건전한 신학교들은 신학의 변질과 좌경화를 방지하는 중요한 장치로 성경관을 핵심으로 하는 신앙고백문을 만들고, 신학교수들에게 그것을 담은 교수서약서에 서명을 하도록 요구한다.

고려신학대학원은 출범 초기부터 구프린스톤신학자들이 제시한 성경관을 천명했다. 성경무오성, 완전영감, 유기적 영감을 가르쳤다. 이 학교는 출범시에 성경에 대한 고백을 담은 교수서약서 제도를 시행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을 시행하지 않는다. 승진·재임용 때에도 신앙과 신학사상을 점검하는 단계가 없다. 교수가 교회와 신학교의 신학적 정박지를 허무는 사상을 가르쳐도 제재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1. 고려신학교의 성경관

자유주의 신학은 일제 치하 35년 간 한국교회 안에 서서히 침투했다. 보수계 서양 선교사들이 신사참배 문제로 본국으로 철수하고, 조선예수교 장로회신학교가 폐쇄되고, 신학자들과 지도자들이 감옥에 가거나 해외로 망명하자, 자유주의 신학은 더욱 확산되었다. 교회는 자유주의 신학을 수용·묵인하는 친일파 인사들이 장악했다. 1946년 승동교회당에서 회집된 장로교 남부총회는, 교회가 지향하는 신학과 정반대의 노선을 따르는 조선신학교를 교단의 신학교육기관으로 인준했다. 그 학교는 일제치하에서 황민화의 도구로 설립되어 정통 기독교 신학 박멸운동을 펼쳤다.

조선신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교회에서 정통신학 체계로 신앙교육을 받은 자들이었다. 자신들이 교회에서 배운 것과 다른 신학을 접하고서 이에 반발했다. 조선신학교의 학생 51명은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과 자유주의 신학의 요점을 문서로 기록하여 제33회 총회(1947, 대구)에 올렸다. 전술했듯이 “진정서”(1947)는 개혁교회와 성경관의 관계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개혁교회는 성경에 절대 권위를 두고 그 위에 건설된 교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와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초자연적 성경관을 우리는 견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신앙은 보수이나 신학은 자유라는 조선신학교의 교육 이념에 수긍할 수 없습니다. 근대주의 신학 사상과 성경의 고등비평을 거부합니다. 자유주의 신학과 합리주의 신학을 배척하는 것입니다.1

이 진정서 사건 후 조선신학교의 학생 상당수가 고려신학교로 편입했다. 그들 중 다수는 박형룡 박사와 함께 1948년에 개교한 장로회신학교로 옮겨갔다.

고려신학교 설립자들은 신학사상이 잘못되면 교회가 혼란에 빠지게 되고, 큰 희생을 치르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려신학교는 조선신학교가 가르치는 자유주의 신학을 의식하며 한국장로교회가 고백해 온 정통신학을 천명하면서 출범했다. 성경에 충실한 신학을 견지하고자 했다. 신학적 순수성을 교회의 생명으로 여겼다.

고려신학교는 박형룡 박사의 학문적 업적과 신학노선을 높이 평가해 왔다. 박형룡은 1930년대부터 한국교회가 잡다한 자유주의 신학사상에 미혹되지 않도록 신학논평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칼빈주의 신학 노선을 이끌면서 장로교회의 교리적 순결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정통적인 신학사상의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의 영광 및 주권과 그 자신의 계시의 무오한 기록인 성경의 권위를 확인함이다. 바른 교의신학은 성경이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치는 바의 질서 있는 논술을 제출하기를 추구한다…. 이 교의신학은 사람의 구원(루터파)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며 사람의 자유(복음적 알미니우스주의파)를 하나님의 주권에 종속시킨다. 이렇게 사람 중심의 신학보다 하나님 중심의 신학을 구성함이 정당함은 하나님은 창조주요, 사람은 그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또 이것은 이신칭의의 실질적 원리를 출발점으로 하는(루터파) 대신 성경의 권위의 형식적 원리로부터 전진한다.2

박형룡은 교회가 성경의 무오성과 영감을 모든 신학과 신앙을 판단하는 척도로 삼아야 한다고 보았다.

고려신학대학원의 이근삼 교수는 박형룡 박사의 『교의신학』을 교재로 삼아 교의학을 가르치면서 성경무오성, 완전영감, 유기적 영감 교리를 가르쳤다. 하나님의 영감은 성경 전부에 확장되었다. 성경의 모든 책들이 동등하게 영감되었고, 모든 내용이 영감되었다. 영감은 도덕적·종교적 진리들에 제한되지 않고 과학적·역사적·지리적인 사실 진술까지 미쳤다. 그것은 성경 저자들의 사상이나 교리에 관련된 사건에 제한되지 않았다. 성경의 한 부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문자와 단어를 포함한다. 성경의 문자들이 잘못 사용되면 성경 전체의 사상 표현과 사실 보도도 잘못될 수밖에 없다. 사상전달은 단어들에 달려있다. 이 둘은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성경 저자들을 기계적인 방식으로 혹은 받아쓰기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생명 없는 기계적 과정을 따르지 않았다. 저자들을 성격, 재능, 교육, 수양, 용어, 문체를 있는 그대로 유기적으로 사용했다. 성경에는 과학적·역사적·도덕적 오류가 없다. 필사자들의 작업이나 번역과정에서 사소한 오류는 있을 수 있으나 원본에는 없다. 성경은 특별계시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3

박윤선 교수도 성경무오성과 완전영감과 유기적 영감을 가르쳤다. 그의 『성경신학』(1972)은 고려신학교에서 가르치던 강의안을 책으로 편찬한 것이다. 서론은 “성경을 바로 아는 성경신학의 기본원리”4로 시작한다. “계시 의존 사색으로만 구원받음”5이라는 이상한 표현을 할 정도로,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의 특별계시와 성경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박윤선은 계시(啓示)를 하나님께서 자기를 인간에게 나타내어 보여주시는 것으로 이해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초자연적 간섭을 통해 구원하신다. 이 구원은 그가 인간에게 자기를 나타내심으로써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옛날부터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자기를 계시하셨다. 족장들에게는 직접 예언과 이적을 통해 나타나셨다. 이적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최고 절정을 이룬다. 이 모든 계시의 사실들은 온 인류를 위해 마침내 기록되고 전승(傳承)된다. 하나님의 계시는 각 개인에게 매번 임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말씀을 전승하는 방식으로 전달된다. 계시의 내용은 그리스도 중심의 역사적 사실에 초점이 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수난, 죽음, 부활, 승천은 모두 일정한 장소와 시간에서 이루어진 역사적 사실이다. 이것들은 역사적 전승을 경유하여 우리에게 알려졌다. 역사적 전승만이 계시 전달의 유일한 방법이다.6
박윤선은 “성경말씀은 단지 옛날의 역사적 기사(記事)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언제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다”7고 말한다. “성경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음성이요, 그의 피조물들에게 주시는 그의 편지이다. 영감도 성경의 속성으로서 늘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과거에 기록될 때에 영감된 것뿐만 아니라 자체가 영감을 계속적으로 주는 책이다”8고 한다.
박윤선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과, 완전영감(만전영감, 축자영감)과, 유기적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과, 성경전체가 오류 없으므로 각 부분도 오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성경의 모든 부분이 전부 하나님의 권위에 속한다. “교회는 성경을 하나님께서 저작하신 하나님의 책이라고 믿어왔고, 거기 있는 말씀은 어떤 종류의 말씀이든지 실수 없는 진리요, 또 실패 없는 권위의 말씀이 되도록 하나님이 저작하신 줄로 믿어왔다.”9 박윤선은 헤르만 바빙크의 성경관을 언급하면서 그가 축자영감과 성경무오설을 강력히 주장하고, 루터와 칼빈이 문자적 무오성을 어떻게 천명했는가를 밝혔다고 말한다.10 박윤선은 성경의 유기적 영감에 대해서도 역설한다.11

박윤선은 성경과 그리스도의 권위를 폄하하는 현대주의 신학운동을 강하게 비판한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을 구자유주의(리츌, 하르낙, 헤르만), 신자유주의(부레데, 불트만), 회색주의(칼 바르트, 세벤스터)로 구분한다. 성경을 오해하는 신학운동으로 구자유주의, 양식사학파, 중간주의, 신정통주의, 바르트주의, 고등비평을 소개한다.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교수들의 글을 모은 『무오한 성경』(The Infallible Bible), 특히 그 안에 있는 스톤하우스와 스킬톤 교수의 성경관을 자신의 것으로 천명하고 소개한다.12

고려신학교(현 고려신학대학원) 교수들은 프린스톤신학자들의 견해와 일치하는 박형룡·박윤선의 성경관에 동의했다.13 고신교단은 이러한 전통 하에서 전통적 개혁주의 성경관을 중요하게 여긴다. 성경 66권 전체가 유기적으로 영감된 무?無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관점은 프린스톤신학자들의 성경관과 일치한다. 미국의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리폼드신학교, 커버난트신학교, 한국의 고신대학교, 광신대학교,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개신대학원대학교, 대신대학교, 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총신대학교, 칼빈대학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등이 이와 동일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프린스톤신학교와 풀러신학교

미합중국장로교회(PCUSA)는 1983년에 미국북장로교회와 미국남장로교회가 통합되어 생긴 교단이다. 이 교회는 전통적인 개혁주의 신학을 포기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신신학(바르트주의)을 지향하고 있다. 이 교회의 성경관은 목사·장로·집사 임직식 때 임직자가 피임직자에게 묻는 질문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여러분은 신구약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된 책이며, 전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독특하고도 권위 있는 증언이며, 당신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받아들이십니까?”

이 질문은 미국장로교회(PCA), 미국정통장로교회(OPC), 한국의 고신교단, 합동교단이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생활의 최종적 규범이라고 믿습니까?”라고 묻는 것과 대조된다. 미합중국장로교회는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하지 않는다. 성경이 “전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독특하고도 권위 있는 증언이며, 당신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가” 하고 묻는다. 성경을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바르트주의 성경관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북장로교회가 1920년대에 다원주의 태도를 가지고 자유주의 신학을 허용한 것은 느슨한 성경관 때문이다. 문화에 대한 교회의 사명에 충실하려는 미명으로 신학의 한계를 넓혔다. 교회의 기구적 통일성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신학적 다양성과 상이한 신앙고백을 모두 수용하는 길을 택했다. 임마누엘 칸트의 인식론의 영향을 받아 절대적인 진리에 대한 확신을 상실한 세계의 기독교 신학은 점차 상대주의와 주관주의의 포로가 되었다. 진리가 고정되고 불변하고 단일한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가변적이고 상대적이라고 생각했다.

오번선언서(1924)의 골자는 신학적 다원주의와 신앙무차별주의이다.14 교회가 “그리스도 복음에 대한 연합된 증언이 시급히 요청되는 세상에 직면해 있는데도”15 서로 싸우고 있다고 개탄하면서 폭을 넓혀 기독교의 한계 안에 자유와 통일을 보존해야 한다고 보았다. 근본도리를 불신하는 사람들을 폭넓게 수용하고 그들이 교회를 돌보고 설교하게 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오번선언서가 문제 삼아 거부한 첫 번째 조항은 정통 성경관이다. 현대주의―근본주의 논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의 권위 문제였다. 성경이 오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교리를 고백하여 교회의 신학적 정체성을 보존하려는 보수파와 문화에 대한 기독교의 역할에 관심을 가진 진보파가 대접전을 벌였다.

메이첸은 성경관을 정통신앙의 최후의 보루로 여겼다.16 신학갈등에 대한 정직하고 책임 있는 해결책은 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배교를 인정하고 강단과 신학교에서 물러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독교인들이 그들로부터 분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복음적 교회의 장래가 신앙을 위해 싸우고자 하는 기독교 용사들의 용기와 결단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술했듯이 미국북장로교회는 오번선언서에 서명한 목사들을 제재하지 않았고, 프린스톤신학교에서는 느슨한 성경관을 가진 교수들의 입지가 강화되는 반면에 정통신학자 메이첸의 입지는 약화되고 있었다. 몇 년 후 교회는 성경이 제시하는 중추적 도리들을 고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재판대에 세웠다. 기독교의 전통적 교리를 불신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재판하고 악평하고 폄하했다. 처음에는 텐트에 코를 밀어 넣은 낙타가 나중에는 목을 집어넣고 결국은 텐트를 박살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풀러신학교는 1947년에 전통적 기독교 신앙에 토대를 둔 복음주의 신학교로 출범했다. 풀러신학교의 설립 목적 가운데 하나는 복음에 대한 변증적 기능이다. 설립자 찰스 풀러(Charles Fuller)는 부흥운동 스타일의 인물이었다. 신학교의 교과과정을 통해 교수들이 정통신학과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믿음을 신학적으로 지켜나갈 수 있는 교육의 장을 만들고자 했다. 교수들은 이러한 설립목적에 동의하고 그 방면의 신학서들을 저술하는 데 힘쓰기로 했다.

풀러신학교는 “교리선언서”를 작성하여 천명했다. “신구약의 정경을 이루고 있는 책들은 처음부터 완전히(plenarily), 축자적(蓄字的)으로 영감을 받아서 기록되었고 전체적으로도 부분적으로도 오류가 없으며, 이 책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행위의 유일하고도 무오한 규범이다”17고 선언했다. “전체적으로도 부분적으로도 오류가 없다”는 말은 성경전체와 성경의 모든 부분에 어떠한 오류도 없다는 것을 뜻했다. 원본 성경은 구원과 관련 있는 내용뿐 아니라 과학, 역사, 연대에 관한 내용도 아무런 오류가 없다고 했다.

해롤 린드셀(Harold Lindsell)은 이러한 과정을 상술하면서 풀러신학교의 교수들은 모두 이 신앙문서에 서명을 했다는 것과 서명을 거부하는 것은 그 기관을 자발적으로 떠나는 것을 시사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것의 일부 조항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하여 서명을 거절하고 학교를 떠난 사람도 있었다. 서명은 했지만 성경무오성에 대한 조항에 의중유보(意中留保) 하는 사람도 있었다.18

신앙진술서에는 학교법인 이사들도 서명을 했다. 그런데 유력한 재력가로 이사가 된 데이비스 와이어하우저(Davis Weyerhaeser)는 성경의 무오성을 믿지 않았다. 그가 신학교 운영에 필요한 막대한 기금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경에 오류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확신해도 그의 이사직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다. 돈의 위력 앞에 진리와 신앙은 묵살되고 있었다.
어느 교수는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도 할 말은 해야겠다고 하면서 성경의 무오성을 부정했다.19 그러나 학교는 그를 해임하지 않았다. 설립자는 성경관 문제를 두고 교수진과 이사진이 양분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 사실이 공개되는 것을 가로 막았다. 화평을 유지하는 것이 진리를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설립자의 아들 다니엘 풀러(Daniel Fuller) 박사는 프린스톤신학교를 졸업했다. 성경무오성을 가르치던 찰스 핫지(Charles Hodge)와 벤자민 워필드(Benjamin Warfield)가 은퇴한 여러 해 후였다. 풀러는 스위스 바젤에서 칼 바르트(Karl Barth) 아래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끝내고 돌아와 교수가 되고, 교수회장으로 임명되었다. 스위스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그가 정통 성경관을 버리고 새로운 성경관을 받아들인다고 하는 소문이 나돌았다.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교수서약서에 서명을 하고 학교 안에 들어온 후에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냈다. 신앙진술서에 서명을 했지만 그것을 의중유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풀러신학교의 1963-1964년도 요람은 “본 신학교는 다음의 신조들에서 표현된 것처럼 교직원들이 각각 매해 학년 초에 서명하고 있는 공식화된 신앙선언문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동의 서명은 의중유보 없이 행해져야 하며, 서명을 할 의사가 없는 교직원은 본교에서 떠나기로 합의하고 있다”20고 하는 신앙선언문을 담고 있다. 성경의 무오성을 믿지 않는 교수들과 이사들도 이 선언문에 형식적으로 서명을 했다.

풀러신학교의 1965-1966년도 요람은 “이러한 동의 서명은 의중유보가 없이 행해져야 하며 동의 서명을 할 의사가 없는 교직원은 본교에서 떠나기로 합의한다”21는 문장을 삭제하고 “모든 교직원들은 신앙고백에 서명한다”고만 진술했다. “매년 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라는 구절도 삭제되었다.

세월이 흐르자 신앙진술서에 서명을 했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성경관을 믿지 않는 교수들이 상당수 나타났다. 의중유보한 교수들은 해마다 신앙문서에 동의 서명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매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무방했다.

성경무오 교리가 거부되면 어떤 사태가 일어나는가를 아는 교수들은 서서히 다른 학교로 옮겨갔다. 찰스 우드브리지(Charles Woodbridge), 윌버 스미스(Wilbur Smith), 해롤드 린드셀(Harold Lindsell), 글리사슨 아쳐(Gleason Archer)가 떠났다. 심리학부와 세계선교학부가 개설되면서 성경의 무오성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수로 많이 초빙되었다.

스위스 바젤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이 학교의 교수가 된 아들 풀러는 “벤자민 워필드의 성경관과 역사관”이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성경이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나 아무런 오류가 없다”는 교리를 부정했다.22 성경에는 두 종류, 곧 계시적인 것과 비계시적인 것이 있다. 계시적인 성경은 전적으로 오류가 없으나 비계시적인 성경은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은 생물학의 문제이므로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주는 지식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그 교리를 수납하지 않아도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 이사야서의 이중 저작설을 증명할 수 있다고 했다. 아담과 하와가 역사적 인물이 아닐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믿거나 부정하는 것은 구원과 상관없다고 말했다.

성경영감론―무오성의 문제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난 후 풀러신학교는 새 신앙고백을 채택했다. “성경은 이러한 신적 계시에 관한 본질적 부분이며 믿을 만한 기록이다. 신구약의 모든 성경들은 성령의 영감으로 주어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행위의 유일 무오한 규범이다.”23 이 선언문은 옛날의 신앙진술서에 있던 성경은 “전체적으로도 부분적으로도 아무런 오류도 없다”고 하는 부분이 삭제된 것이다.

린드셀은 새 신앙선언문과 옛 신앙신언문의 차이는 신구약의 모든 성경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행위의 유일 무오한 규범이다”는 말에 나타난다고 하면서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이 “무오한”이란 단어가 어디에 놓여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새 신앙선언문은 신구약 성경이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규범이다”고 하지 않고 “무오한”을 신앙과 행위의 문제에 국한한다. 신앙과 행위에 관계된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 않은 나머지 성경의 기록에는 오류가 들어 있다는 것이 풀러의 견해였다.24

이 때부터 풀러신학교에는 성경의 무오성을 믿지 않는 교수들과 이사들이 속출했다. 성경관이 문제가 되어 학교를 떠난 사람은 없다. 이 학교는 역사적 복음주의 신앙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25

풀러신학교의 김세윤 교수(신약학)는 성경후대삽입론(Interpo- lation)을 주장한다. “여자여 잠잠하라”는 구절에 대해 설명하면서 고린도전서 14장 “34절과 35절은 선지자들이 예언하는 데 대해 바울이 타이르는 문맥을 끊고 삽입된 것임이 드러납니다…. 사본학적인 불안정성과 문맥상의 문제점을 감안하여 34-35절을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봅니다”26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14장은 바울이 교회에서 예언하고 방언하는 것에 관한 가르침을 주는 장이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생활에서 남자의 독점적 리더십을 옹호하려는 사람들이 이 구절을 디모데전서 2장 11-15절과 함께 계속 바울의 진짜 가르침으로 보고 금과옥조로 삼기를 원한다면 심각한 신학적 문제를 만들어 내게 된다”27고 비판한다. 고린도교회의 여자들이 갑자기 자유를 얻게 되자 머리에 쓰던 너울조차 벗어 던지고 떠들어대는 바람에 예배 분위기가 어지럽게 되었는데, 이 같은 상황에서 바울이 질서를 잡기 위해 한 말이라고 한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는 구절도 신학적인 원칙에 입각한 논리라기보다는 여자들의 복장을 단정하게 하는 교훈을 강화하기 위한 임시 논리(ad hoc argument)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성경 사본들은 김세윤이 삽입한 것으로 보는 본문을 가지고 있다. 후대에 삽입이 이루어졌다면 어찌 모든 사본들이 동일하게 그 본문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 본문이 놓여 있는 위치가 같지 않은 사본도 있다. 그러한 사상이 고린도전서만이 아니라 디모데전서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런 점들은 삽입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입증한다. 김세윤의 주장은 여러 가지 고대 증거들을 무시한 추측에 불과하다. 삽입설, 편집설, 성경무오설의 관계에 대해서는 분석적인 논의가 필요하지만, 김세윤의 주장이 심상치 않은 것만은 틀림없다.

풀러신학교의 신학적 변질 과정이 주는 역사적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신학교는 교리적 표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신앙선언문이나 교수서약서 등이 있어야 한다. (2) 낙타가 사막의 텐트에 코를 집어넣고 그 다음에 머리를 집어넣고 그 다음에 텐트를 박살내듯이, 신학의 변질과 좌경화는 처음에 조금 문을 열어 준 것에서 시작한다. (3) 교수들이 신앙문서에 서명은 하지만 속으로는 그 내용을 의중유보 하기도 한다. 매년 혹은 승급 단계 마다 신학교수의 사상을 점검할 수 있다. (4) 그 기관의 공적인 표준들이 실제로 지켜지지 않으면 그것을 다시 시행하는 것은 어렵다. 첫 단추가 잘못 잠기면 나머지는 전부 잘못 잠기게 된다.

3. 신학교수서약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이 오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본다. 히브리 백성들의 종교개념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것들을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대주의-근본주의 논쟁기에 자유주의 신학을 대변한 미국북장로교회의 목사 코핀(Henry Coffin)은 성경을 하나님의 오류 없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서 절정을 이루는, 진보해 가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경험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프린스톤신학교의 성경무오 교리를 조롱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몇몇 최근의 학자들은 지금 존재하고 있는 어떤 성경 귀절도 오류가 없다고 한다. 이러한 책들의 원본, 저자들의 손에서 유래된 대로의 원본은 하나님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어 전혀 오류가 없다는 이론을 펼친다. 그러나 이 원본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설령 실제로 그것을 발견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원본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이론은 아래의 자장가를 읊조리는 것과 같다.

“귀리, 완두콩, 콩, 그리고 보리가 자란다.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며
어느 누구도 모르는 곳에서.”28

코핀은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이 신앙의 본질에 해당하는 교의가 아니라고 말한다. 예수의 기원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통 성경관을 갖지 않은 사람들의 다른 신학 주지들도 정통신학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구프린스톤신학자들이 명료하게 제시한 성경무오 교리(Biblical Inerrency)의 핵심은 성경의 저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직접 쓴 원본에는 오류가 없다는 데 있다. 하나님은 완전한 분이므로 그의 말씀 또한 완전하다. 불완전한 인간의 글이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필사자들의 부주의로 생긴 미미한 오류나 번역상의 불완전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성경무오성은 통상 완전영감과 유기적 영감과 함께 언급된다. 완전영감(Plenary Inspiration)은 영감의 범위(scope)를 의미한다. 축자영감이라고도 한다. 성경의 모든 부분이 예외 없이 다 영감되었다고 본다.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다고 하면서 성경의 특정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다른 어떤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정통신학은 성경 전체가 완전히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한편, 신정통주의(바르트주의)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유오한 인간의 말이라고 본다. 다만 독자가 그것을 읽을 때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이 되도록 한다”고 주장한다. 갑(甲)에게는 A 부분이, 을(乙)에게는 B 부분이, 병(丙)에게는 C 부분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것이다.

유기적 영감(Organic Inspiration)은 영감의 방법(method)을 일컫는다. 하나님이 저자들을 유기적으로 사용했고, 사람에게 말씀을 주실 때 말씀을 받아쓰게 하거나 기계적으로 쓰게 한 것이 아니라 저자의 성격, 성벽, 재능, 교육 정도, 수양, 언어, 풍습을 반영한 채로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다. 그 내용이 죄에 오염되지 않게 하셨다.

유기적 영감을 강조하다 보면 성경 영감의 핵심 일부를 호도할 가능성이 있다. 하나님께서 유기적인 방법이 아니라 직접적인 방법으로 성경 저자들을 영감시킨 경우가 없지 않다. 인간의 생각과 전혀 다른 내용을 주실 때에는 선지자들을 단순 도구로 사용했다.

보수계 장로교회들은 성경무오성, 완전영감, 유기적 영감론을 신학적 토대로 삼고 있다. 성경관이 부정되면 내리막길에 서게 된다는 것을 알고서 신학교수들에게 “교수서약서”에 서명을 할 것을 요구한다. 프린스톤신학교는 1920년대까지 취임하는 교수들에게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하도록 의무화 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과 장로회 제도에 초점을 둔 내용이다.

나는 하나님과 이 신학교 이사들 앞에서 미국북장로교회의 신앙고백과 교리문답을 나의 신앙고백으로, 하나님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계시하신 교리와 신앙의 체계의 요약이며, 성경을 바르게 해석한 것으로 엄숙히 그리고 성심껏 채택하고 받아들여 준수할 것이다. 나는 위 교단의 정치형태를 영감된 성경에 일치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을 엄숙히 그리고 성심껏 선언한다. 나는 이 신학교에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장로교회 정치의 근본적 원리들에 반대하지 아니하며 위 신앙고백이나 교리문답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모순되거나 위반되는 것을 가르치거나 설득, 암시하지 않을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29

프린스톤 교수 중에는 신앙고백이 담긴 서약서에 서명을 했으나 그 내용에 의중유보(意中留保)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교수가 되고자 학교가 요구하는 문서에 서명을 했으나 마음으로 그 조항들에 동의하지 않았다. 교회가 좌경화될 때 이러한 교수들은 자유주의 신학에 포용적인 태도를 취했다.

구프린스톤신학교를 부활시킨다는 기치로 출범한 필라델피아의 웨스트민스터신학교는 프린스톤의 서약문과 유사한 것을 제시하고 서명하게 한다. 성경, 신앙고백서, 장로교 제도, 교리체계에 상반되는 것은 가르치지 않겠다고 하는 내용이다.

나는 하나님과 이 신학교의 이사회와 교수회 앞에서 다음과 같이 서약한다. (1) 구약과 신약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실천의 유일한 무오한 규칙이라고 믿는다. (2)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대·소교리문답을 성경이 제시하는 교리와 인간 구원을 위한 계시를 체계적으로 제시한다고 믿으며 나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수납한다. (3) 장로교 형태의 교회정치가 영감된 신적 계시의 말씀에 일치한다고 믿는다. (4) 이 학교의 교수로 종사하는 동안 위 교리체계에 상반되는 그 어떤 것도 직접적으로나 암시적으로 가르치지 않을 것이며, 장로교회 정치의 근본원리에 모순되는 것을 넌지시 말하거나 묘한 관심을 갖도록(insinuate) 하지 않을 것을 서약한다.30

위 서약문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마지막 항목이다. “이 학교의 교수로 종사하는 동안 나는 위 교리체계에 상반되는 그 어떤 것도 직접적으로나 암시적으로 가르치지 않을 것이며, 장로교회 정치의 근본원리에 모순 되는 것을 넌지시 말하거나 묘한 관심을 갖도록(insinuate) 하지 않을 것을 서약한다.” 프린스톤신학교가 자유주의 신학으로 넘어간 것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보인다. 교수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넌지시 조장하고, 묘한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과정을 통해 좌경화가 진행된 것을 시사한다.

박윤선 교수를 동력으로 하여 설립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는 신임교수들에게 아래의 조항을 담은 서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한다.

(1) 나는 성경의 축자영감성을 믿고 그대로 가르치기로 서약합니다.
(2) 나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대·소교리문답이 성경과 일치되는 줄 알고 고백하고 따르기로 서약합니다.
(3) 나는 성경에 위배되는 현대주의 신학의 학설들을 소개하되 비판적으로 그 잘못된 점을 지적하겠습니다.
(4) 나는 장로교 헌법의 근본 원리가 성경과 일치되는 줄 알고 그대로 받기로 서약합니다.
(5) 나는 기도와 경건생활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6) 나는 상기 서약을 거부하거나 위배할 경우 교수직에서 사면하기로 서약합니다.31

위 서약문의 (1) 축자(완전)영감설에 관한 조항은 자유주의 신학의 침투를 경계하기 위한 것이다. 성경에 위배되는 현대주의 신학의 학설들을 비판적으로 가르치겠다고 하는 (3)번 조항은 자유주의 신학,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학, 신정통주의 등에 대한 이 학교의 확고한 신학적 입장을 밝힌 것이다.
한편, 총신대학교는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을 보수하기 위한 방편으로 일곱 단계의 제도 장치를 마련하여 시행하고 있다.
첫째, 신임교수에게 아래의 교수서약문에 서명을 하게 한다.

나는 하나님과 본 대학 이사회 앞에서 신구약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과 본 대학 (직위) 교수로 있는 동안 직접 간접으로 본교 조직과 규칙에 위반되는 다른 것을 결코 가르치지 아니할 것을 엄숙하게 서약합니다.32

둘째, 각 단계의 승진 때마다 위 서약문에 서명을 하게 한다. 신학사상을 점검하고 그것을 승진의 근거로 삼는다. 승진심사는 학술적인 연구업적물 만이 아니라 신학사상을 우선적인 조건으로 삼는다.

셋째, 자체의 신앙고백서(doctrinal statements)를 채택하고 고백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확고하게 천명한다.

1) 우리는 신구약 성경이 영감된 오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행위의 정확 무오한 유일의 법칙임을 믿는다.
2) 우리는 한 하나님이 영원토록 성부, 성자, 성령 삼위로 계심을 믿는다.
3) 우리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권적으로 섭리하심을 믿는다.
4) 우리는 성육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과 인성, 대속의 죽음, 육체적 부활 그리고 역사적 재림을 믿는다.
5)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전적 부패, 그리스도의 대속의 보혈을 통한 구속을 믿는다.
6) 우리는 성령의 중생하게 하시며, 회개하고 믿게 하시며, 내주하시며, 거룩하게 하시며, 충만하게 하시는 복음 사역을 믿는다.
7) 우리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와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와 주 되심을 믿는다.
8) 우리는 구원받은 백성이며, 교회의 근본적인 사명이 예배, 복음증거, 성도의 교제, 기도, 선교이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한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믿는다.
9)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격적이며 역사적인 재림, 공의로운 심판 그리고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을 믿는다.
10)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에 나타난 전통적인 개혁 신앙이 성경의 가장 탁월한 표현으로 믿는다.33

넷째, 신규 임용 규정에 전임교원은 합동교단에 속한 교인으로 그 “교단 신학과 신앙에 위배되지 아니한 자”로 제한한다.

다섯째, 신규 임용된 전임교원은 총신대학교가 지향하는 성경관과 신학 전통을 배우고 그것에 동화하도록 하기 위해 위원회가 지정하는 도서를 읽고 연구를 하게 한다. “신학과를 중심으로 총장이 임명하는 위원회가 지정하는 도서를 연구하며 매년 1회씩 위원회가 주관하는 세미나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신학계열의 교수는 칼빈주의 성경관을, 비신학계열 교수는 칼빈주의적 성경관과 그 성경관에 따른 “해당 전공과목의 칼빈주의적 방향모색”에 관한 논문을 각각 작성하여 조교수 임용 심사서류를 낼 때 함께 제출하여 평가 받도록 한다.

여섯째, 신학교수들의 신학사상을 정기적으로 검증한다. 저서만이 아니라 설교, 강연, 강의, 기타 활동 내용이 성경과 교단의 헌법에 명시된 개혁주의 신학사상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전임교원은 해임한다. “직위해제 및 해임” 조항에서 (1) 이사회가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신학입장을 밝히는 진술서에서 성경과 본 교단의 헌법에 명시된 개혁주의 신학사상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전임교원, (2) 저술, 강연, 강의 및 기타 활동에서 본 교단이 지향하는 개혁주의 신학사상과 일치하지 않는 전임교원”을 임명권자가 교원징계 절차에 따라 징계조치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일곱째, 교원승진과 재임용 때와 정년보장 임용 때에 신학사상과 인격을 검토하여 승진에 반영한다. 연구업적만을 가지고 승진과 재임용 심사를 하지 않는다. “교원승진 및 재임용에 관한 심사기준”과 “정년보장 교원임용심사위원회 규정”은 “설교, 강의, 강연, 저술, 연주가… 본 교단이 지향하는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과 일치해야” 하고, 그 여부를 따져 승진, 재임용, 정년보장을 허락한다고 명시한다. 교수의 경건회 예배 출석도 심사 조항 중의 하나이다.

아시아연합신학대학교는 교원임용 심사평가의 기본사항으로 “본 대학 신학적 입장과의 적합성”이라는 항을 두어 교수의 신학사상이 그 학교와 일치하는가를 확인하고 그것을 신규임용, 승진, 재임용의 근거로 삼는다. 이 학교는 복음주의 노선을 지향한다.

4. 고려신학교의 교수서약서

고려신학교는 조선신학교의 자유주의 신학을 경계하면서 출범과 더불어 취임하는 교수들에게 교수서약서에 서명을 하도록 했다. 초대 교수로 취임한 박형룡·박윤선·한부선 교수가 서명했다. 박형룡은 1947년 10월 17일, 부산중앙교회당에서 가졌던 교수 취임석상에서 세 교수를 대표하여 서약문을 낭독했다. 이 서약문은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교수서약서와 동일한 내용이었다.34

고려신학대학원은 교수서약서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 않다. 현재 봉직하고 있는 교수 가운데 교수서약서에 서명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제부터, 왜 시행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다.
고려신학대학원의 신학교육기관다운 특수성은 고신대학교에 편입되면서 점차 상실되었다. 고신대학교 “교원인사규정”의 신규임용 자격 기준은 “본교의 교원은 기독신자로서 수세 후 3년이 경과된 자”로 규정하고 있다. “정관시행세칙”은 “신학대학원 교원을 임명하고자 할 때는 박사학위 취득자로서 목회경험 3년 이상인 자를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한다. 그것이 전부이다. 총신대학교가 “교단 신학과 신앙에 위배되지 아니한 자”를 교수로 임용하며, 모든 분야의 신규 임용되는 전임교원에게 총신대학교의 신학전통에 동화하도록 위원회가 지정하는 도서를 읽고 매년 1회씩 연구하도록 하며, 칼빈주의 성경관을 확실하게 고백하도록 요구하며, 승진할 때마다 교수 연구업적보다 신앙고백과 신학-신앙을 더 엄격하게 따져 승진 요건으로 삼는 것과 현격한 차이가 있다.35

논리학에 범주착각의 오류(category mistake)라는 것이 있다. “신부님이 에이즈에 걸렸겠어?” “저렇게 돈 많은 사람이 고작 만년필 한 개를 훔쳤겠어?” “예쁜 버섯에 독이 들어 있을 리 만무해!” 하는 따위 판단이다. 어떤 것을 강조하는 사람이 그것을 말하는 다른 사람도 모든 면에서 자기와 같을 것으로 여기거나, 동일한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을 같은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오류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격언이 있다. 신학노선은 언제나 바뀔 수 있다. 열조들의 신앙을 기억하지 못한 새로운 세대가 교회의 주도권을 가지면 신학은 변한다. 역사적 칼빈주의로 유명하던 프린스톤신학교가 현대주의 신학의 요람이 될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어느 누가 칼빈이 『기독교강요』를 가르치던 성삐에뜨르교회 강단에서 불교 승려 달라이 라마가 설교를 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조차 했겠는가.

고려신학대학원은 교수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신학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좌경화, 변질, 생명력 상실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이다.

(1) 나는 신구약 성경이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실천의 유일한 규칙이라고 믿는다.
(2) 나는 성경무오성, 완전영감성, 유기적 영감성을 인정하며 그것을 가르치기로 서약한다.
(3) 나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대·소교리문답을 성경이 가르치는 교리와 인간 구원을 위한 계시를 체계적으로 제시한다고 믿으며 나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수납하고 따르기로 서약한다.
(4) 나는 장로교 형태의 교회정치가 영감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부합한다고 믿으며 그것을 존중한다.
(5) 나는 성경에 위배되는 현대주의 신학의 학설들을 소개하되 비판적으로 그 잘못된 점을 지적할 것을 서약한다.
(6) 나는 고신교단의 역사와 전통과 정신을 존중할 것을 서약한다.
(7) 나는 저술, 강연, 강의, 설교, 논술, 기타 활동에서 성경과 고신교단이 헌법에 명시하는 개혁주의 정통신학에 위배되는 사상을 담지 않으며 가르치지 않을 것을 서약한다.
(8) 나는 이 학교의 교수로 종사하는 동안 위 교리체계에 상반되거나 장로회 원리와 교단 헌법에 어긋나는 것은 어떤 것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암시적으로 가르치지 않으며, 넌지시 말하거나 묘한 관심을 갖도록 하지 않으며, 냉소적으로 소개, 언급하지 않을 것을 서약한다.
(9) 나는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는 인격과 영성과 경건생활을 유지할 것을 서약한다.
(10) 나는 상기 조항들에 위배되는 사상을 가질 경우 그것을 의중유보(意中留保)하지 않으며, 교수직을 즉각 사면할 것이며 해직, 정직 등 어떤 처벌에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을 것을 서약한다.

미국 에모리대학교에 속한 캔들러신학교는 미국연합감리교회의 계통의 목회자 양성기관이다. 에모리대학교는 종종 사신신학(死神神學)으로 유명한 토마스 알타이저(Thomas J. Altizer)와 동일시되고 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며 그가 십자가 위에서 죽었으므로, 신이 죽었다고 하는 그의 신학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신관을 부정한다.

알타이저의 신학은 에모리대학교의 이미지를 추락시켰다. 교회의 지원과 신뢰도를 크게 하락시켰다. 캔들러신학교는 정통신학을 고백하지는 않으나 하나님이 죽었다고 말할 정도로 자유주의적인 학교는 아니다. 그런데도 그를 추방하지 못했다. 인문학 위주의 종합대학교가 자유로운 사상 표현을 이유로 교수직을 제재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자 이 신학교의 동문들은 그에 대한 거부운동을 시작했다. 알타이저는 집단적인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뉴욕대학교로 옮겨갔다.

신학사상은 고집스런 특징이 있어서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대학교나 신학교가 지향하는 신학과 전통에 걸맞지 않는 사상을 가진 교수는 대개 스스로 자신의 이념과 일치하는 대학이나 목회지로 자리를 옮긴다. 신학사상이 불일치하는 데에도 그 학교를 떠나지 않고 거기에서 녹봉을 받는 것은 양심불량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좌경화는 자유주의 신학에 “쬐끔” 문을 열어 준 것에서 시작한다. 교회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신사조는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 않는 그 작은 틈바구니로 들어온다. 신학이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양할 수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하며, 어찌 함께 부름을 입었음을 알면서 홀로 옳음을 주장하며 남의 소리를 외면해 버릴 수 있는가 하고 유혹한다. 낙타는 쬐끔 열린 틈바구니에 코를 집어넣고, 머리를 집어넣고, 목을 집어넣고, 나중에는 텐트를 박살낸다.

교회가 “교사”들의 신학사상을 확인하고 신학교가 교회의 신앙을 가르치도록 감독하는 것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교회 돌봄의 직무이다.36 신학교수는 저술, 강의, 강연, 설교, 인터뷰, 사이버공간의 글, 기타 지적 활동에서 자신의 신학사상을 반영한다. 신학교육에 대한 교회의 감독권이 정치적으로 오용되지 않을 수 있다면, 신학교수의 사상에 대한 검증작업은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과 생명력 유지를 위한 중요한 과업이다. 교회의 신학에 관한 최종 권위는 교회에 있다.

미국북장로교회가 정체성과 생명력을 상실하고 추락하고 있는 것은 교회가 진리파수의 사명 수행에 태만했기 때문이다. 오번선언서(1924)에 서명한 자들, 유서 깊은 기독교 성경관을 부정하는 자들을 교회법으로 제재하지 않은 탓이다. 진리를 팔아 화평이라는 팥죽 한 그릇을 산 것이 얼마나 두려운 방종이었는가 하는 것은 반세기 후에 명확하게 드러났다.

이 글은 고려신학대학원이 발행하는 개혁신학과 교회 제17호 (2004)에 게재된 "성경관과 신학적 정체성"을 옮긴 것이다. 근간예정인 "교회연합운동의 우상"에도 수록될 예정이다. 각주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