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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_엔게디(Ein Gedi) 계곡_다윗의 샘- 준비중 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피해 피난을 했던 곳은


아둘람(삼상 22:1), 황무지 수풀(삼상 23:14), 마온 황무지(삼상 23:24),


엔게디 요새(삼상 23:29)이다.


 


아둘람(Adulam)


뜻 : 피난처


(1) 옛날 유다의 친구 히라의 고향(창38:1).
(2) 가나안 31 성중의 하나로 유다 지파의 소유(수12:15,15:35).
(3) 이 성 부근에 회석벽의 굴이 많아 다윗이 사울왕을 피하여 이 굴에 숨었을 때 그의 친구와 가족들이 찾아 왔다(삼상22:1-2).
(4) 다윗의 용상 3인이 이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베들레헴 우물물을 길어왔고 (삼23:14-17,대상11:15-19).
(5) 르호보암이 건축한 국방성 중의 하나(대하11;7).
(6) 바벨론에서 귀환 후에 다시 유다 족속이 거주하였다(느11:30).


 



 


마온(Maon)


뜻:주민
[1] 헤브론에서 남쪽으로 14.4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으로 현재의 텔 마인(Tell Ma'in)이다.


(1) 가멜/십과 같이 기록되어 온 유대 고을(삼상25:1).
(2) 나발의 고향(삼상25:1).
(3) 다윗이 은신 하였던 곳(삼상23:24, 25:1).


 



 


엔게디(Engedi)
뜻: 염소의 샘
(1) 사해 서안 중앙부에 있는 샘인데 구명은 하손다말이여 지금의 이름은 아인게데라 부른다(창14:7, 수15:62, 대하20:2).
(2) 주위에 종려나무와 포도원의 고벨화가 유명하다(아1:14).
(3) 모압인과 암몬인이 이곳에 와소 여호사밧을 치려다가 세일산인을 친후 피차 살육하여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대하20:1-2, 23, 24).
(4) 이곳에서 예루살렘에 가려면 시스 고개를 넘는다(대하 20:16).
(5) 에스겔 선지는이 곳에서부터 엔에글라임까지 그물치는 곳이 되겠다 하였다(겔47:10).


 



 


십 황무지 수풀은 현재까지 정확한 장소를 밝혀내지 못했다...


 


 


다윗:(Dauivd, David) , 뜻 =「사랑함」


이스라엘 제 2대의 왕(재위 BC 1060-1021, 1010- 971)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유다 지파 이새의 막내 아들로 베들레헴에서 출생했다.


 


고래의 전설에 따르면, 다윗의 재위는 BC 1055- 1015이라고도 한다. 그의 출생도 BC 1085년, 또는 BC 1040년(삼하 5:4에 근거)설이 있어 구구 각각이다.


 


다윗에 관한 이야기는 ① 사무엘상 16장- 열왕기상 2장 까지와, ② 역대상 2, 3, 10-29장의 기사, 그리고 ③ 많은 시편의 표제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중에서 ①은 가장오래된 것으로서 가장 신빙할 만한다.


 


역대서에 기록된 역사의 대부분은 직접 사무엘서에서 인용한 것이지만, 또 이외의 자료에서 인용한 것도 적지 않다. 이 책에 기록된 다윗은 이상적인 이스라엘 왕국의 건설자로서 경신자(敬神者)의 본으로 생각한 기원전 3세기의 경건한 유대인의 마음에 그려진 자이다.


 


또, 시편 중 73편은 그 표제에 다윗의 작품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다윗의 생애에 일어난 어떤 특수한사건과 관련된 것이다. 시편으로 다윗의 역사, 또는 성격을 증명하기란 어렵다. 따라서 다윗의 역사로서 우리가 증거할 것은 주로 사무엘 전후서(왕상 1,2장과같이)이다.사무엘상 9- 20장과 역대상 1, 2장의 기사는 가장 오래된 것이고, 가장 귀중한 것이고, 기타 저서는 비교적 만대(晩代)에 속한다고 한다. 이제 그의 생애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살펴보자.


 


(1)목동 다윗:


유대의 베들레헴에서 지냈다. 8형제 중 막내(삼상 16:10,11,17:12-14)인데, 계보(대상 2:13-15)에는 7명밖에 없다. 그 중 한 사람은 자식 없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이새의 조상에 대해서는 사무엘서에 이것을 기록하지 않았지만, 룻기의 계보에 이새는 오벳의 아들, 보아스의 손자로 되어 있으며, 베레스까지 올라갔다(룻4:18-22). 다윗의 어머니는 하나님을 섬긴 경건한 부인이었다(시 86:16,116:16).


 


그의 조상에 대한 기록은 아름답고 훌륭하나, 때로는 죄의 오점(汚點)도 섞여 있다(창37:26,27,38:13-29,43:8, 9, 44:18- 34, 민 1:7,수 2:121,룻 4:17-22).


 


소년 다윗은 혈색이 좋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웠다(삼상 16:12). 아버지의 명령으로 양을 지키고 있을 때, 덤벼드는 사자나 곰을 쳐 죽여 임무에 대한 충실성과 용기를실증했다(삼상 17:34-36).


 


음악적 소질이 비상하여 이 무렵 수금을 잘 탄다는 것이 알려졌고, 전술한 바와 같이, 후에는 시도 많이 썼다. 사울 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을 때, 하나님은 선지자 사무엘을 베들레헴에 보내어 사울의 뒤를 이를 자로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였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가서 그의 아들들을 차례로 볼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그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고 말씀하시므로써, 일곱 아들은 택하지 않으셨다.


 


이 때 들에서 양을 지키고 있던 막내 다윗을 불러오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삼상 16:12)고 말씀하시니, 사무엘이 기름뿔을 취하여 다윗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그는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었다.


 


그러나, 이 때 사울의 적의(敵意)를 일으키게 할까봐 아무런 공적 선언은 하지 않았다. 그저 그 곳 장로들 앞에서 행해졌다는 점에 공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이 기사에 한해서는 이 기름 부은 목적이 사람들에게 언급되어 있지 않다(삼상 16:4,5,13). 그러나, 이새와 다윗에게는 말했음에 틀림없다. 이것은 다윗의 인생에 있어서 제 1의 전기(轉機)이며,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크게 임하셨다. 그러나, 그는 일상자기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2)사울을 섬긴 다윗: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했으며, 우울병에 걸려 광적으로 발작을 일으키고는 했다. 그래서 신하들은 왕의 병이 도질때, 그의 위로가 되게 수금을 잘 탈 줄 아는 사람을 구해서 가까이 모시게 하는 것이 어떠냐고 진언했다.


 


한 신하가 다윗을 추천하면서 수금을 "탈 줄을 알고,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라고 말했다. 사울은 다윗을 불러다가 음악으로 위안을 받고, 그의 인품도 또한 사랑하여 자기의 병기 드는 자로 삼았다(삼상 16:19-23삼하 18:15).


 


이렇게 비롯된 다윗의 새 일은 그에게 대하여 좋은 훈련이기도 하였다. 그는 군사와 정치를 배우고, 유능한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궁중 생활의 좋은 면 뿐만 아니라 나쁜 면도 관찰했다. 그러나, 아직 다윗은 상루 옆에 늘 붙어 있지 않고 사울의 병증세가 나을 때는 베들레헴에 돌아와 양을 쳤다(삼상 17:15). 다윗이 집에 있을 때에 블레셋 사람이 유대에 침입하여 베들레헴의 서쪽 24km 지점에 포진했다. 사울은 이스라엘 군을 이끌고 이를 맞았다.


 


다윗의 세 형은 이 군대에 들어가 있었는데, 종군 6주일 후 아버지는 그들의 위문을 위해 다윗을 보냈다. 다윗이 전장에 이르러 형들에게 문안할 때에 블레셋 사람의 싸움을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는 자가 항오에서 나와 도전하는 오만불손한 말을 듣자, 다윗의 마음은 끓어 올랐다. 이스라엘 군은 무서워 도망쳤다. 사울 왕은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는 많은 재물과 딸을 주고, 그 아비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자유하게하겠다고 현상을 걸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모욕을 제거해 주시리라 확신하고, 이렇게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블레셋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고 물었다. 다윗은 사울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의 결심을 표명하니, 사울은 그에게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축복하고, 자기 군복과 놋투구, 그리고 갑옷을 입히고 칼을 채웠으나, 그는 이를 사양했다. 골리앗은 무거운 투구를 입고 있어 동작이 둔하여 접근하지 않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다윗은 매끄러운 돌다섯 개와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을 대적하러 나갔다. 하나님에게 대한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대적에게 향한 것이다. 골리앗의 큰 호통과 저주에 다윗은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 17:45-47)고 말하면서, 돌을 물매로 던져 골리앗의 이마를 치자, 그는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삼상 17:49). 다윗이 달려가서 골리앗의 머리를 베니 대적들은 도망치고 이스라엘과 유다 군은 대승하였다. 그는 골리앗의 머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칼은 성막에 바쳤다(삼상 17:54,21:9).


 


다윗이 골리앗을 향하여 나갈 때, 또 승리자로서 돌아왔을 때, 그가 누구 아들인가라는 질문은 다윗의 가계(家系)에 대한 사울의 관심에 관계가 있었다(삼상 17:55). 왜냐하면, 사울은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는 딸을 주고, 그 아비의 집은 면세(免稅)해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삼상 17:25,18:18). 사울은 다윗이 자기 사위로서 부끄러울 것 없는 가문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골리앗에 승리한 것은 다윗 인생의 제 2의 전기였다. 이때부터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깊은 우정 관계를 맺게 되었다. 요나단은 그를 자기 생명같이 아끼고 사랑했다(삼하 18:1).


 


이 두 이야기를 조화시키려는 기도(企圖)가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행해졌으나, 이렇다할 만족을 얻지 못했다. 여하튼 다윗은 그때부터 궁중에 있게 되고, 자기의 집으로 가는 것을 왕은 허락하지 않았다. 요나단은 그에게 겉옷˙군복˙칼˙활˙띠 등을 주었다. 다윗이 사울의 시키는 모든 일을 지혜롭게 잘 처리하니 왕은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다.


 


이렇게 그가 궁중에서 지위는 얻었지만, 그의 명성때문에 사울의 질투를 받았다. 즉, 다윗이 개선할 때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여인들이 나와 노래하며, 춤추며, 북을 치면서 환영했는데, 그들은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뛰놀며 화창했다. 이 말을 들은 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주목하게 되었다(삼상 18:6-9).


 


나라를 자기보다 나은 자의 손에 주셨다는 사무엘의 예언(삼상 15:17-29)이 다윗에게 실현된다고 본 사울은, 그것을 방해하기 위해 다윗을 죽이려했다(삼상 18:10,11). 즉, 왕 자신을 위해 수금을 타는 다윗에게 창을 던졌던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피하여 실패했다. 사울은 그를 두려워하여 멀리하기 위해 천부장으로 삼았다(삼상 18:13). 온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은 다윗을 사랑하였다.


 


사울은 다윗의 아내로 주겠다던 맏딸 메랍을 아드리엘이라는 자에게 주어 그 약속을어겼다(삼상 18:17-19). 또 사울은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는 것을 이용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블레셋 사람의 양피 100을 가져오면 딸을 주겠다고 말했다. 다윗도 미갈을 사랑했으므로 그는 블레셋 사람 200을 죽이고 그 양피를 왕에게 바치고 사위가 되었다(삼상 18:20-27).


 


다윗의 평판이 점점 높아짐에 따라 사울의 두려움도 커졌다(삼상18:29,30). 이렇게 되니 다윗을 없애려는 살해 의도는 공공연하게 되었다(삼상 19:1). 사울은 아들 요나단과 모든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는 명령을 공공연히 내렸던것이다.


 


다윗을 사랑하는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이 너를 죽이려하니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 무슨 일이 생기면 알리겠다"고 하고 왕에게 나가서 다윗이 아무 죄가 없으니 죽이지 말라고 부탁했다. 사울이 아들의 말을 받아들여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말하므로 다윗이 다시 왕 앞에 있게 되었다. 그 후 전쟁이 다시 일어나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무찔렀다(삼상 19:8).


 


사울에게 악신이 접하자, 수금타는 다윗에게 그는 또 창을 던졌으나, 이번에도 이를 피한 다윗은 그 밤에 집으로 도망쳐 갔다. 그리고 아내 미갈의 도움으로 창문에서 달아 내리움을 받아 성밖으로 도망쳤다(삼상 19:17).


 


다윗은 그 길로 사무엘을 찾아 라마 땅 나욧으로 갔으나, 추격의 손길이 그 곳까지 미치었다(삼상 19:18-22). 그리하여 다윗은 요나단에게로 도망쳤다. 요나단은 다윗을 에셀 바위에 숨겨두고, 월삭제의 축연에 나가 다윗을 변명해 주다가 아버지 사울에게죽을 뻔 했다(삼상 20장).



 


(3)쫓기는다윗: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놉의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가서 왕명이라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먹을 것과 칼을 얻었다. 여기서 다윗의 옛날 신앙과 용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삼상 21:1-9).


 


그 곳에서 다윗은 사울의 대적인 아기스에게 보호를 구하여 가드로 갔다. 그러나, 이 블레셋(가드는 그 5개 중요 성읍의 하나) 왕은 그의 보호를 거부하고 오히려 붙잡았으므로(삼상21:14,시 56편표제)다윗은미치광이를 가장하여 간신히 석방되었다(시 34편표제).


 


그는 신앙을 다시 찾고(시 34편) 유대로 돌아와 아둘람 굴에 숨었다(삼상 22:1). 그러나 그의 부모는 모압으로 도망갔다(삼상 22:3,4).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사모하여 부하로 따랐다. 그 중에는 놉의 제사장 아비아달과 선지자 갓도 있었으므로(삼상 22:5,20,26:6) 신앙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


 


다윗은 그일라의 위급함을 듣자, 자신의 위험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구출했으나, 그는 배신하여 다윗을 사울에게 내어주려고 하였다. 이 때 요나단은 다윗을 찾아 위로하고 장래 다윗은 왕이 되고, 자기는 그 다음이 되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갔다(삼상 23:1-18). 이 시기에 다윗은 몇 번씩이나 사울에게 목숨을 빼앗길 뻔한 아슬아슬한 일도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지켜주셨으므로 모면했다.


 


그는 어떤 때는 사울의 생명을 구해 주기도 했다. 한번은 다윗과 그 일행이 동굴에 들어가 있는데, 사울이 잠을 자기 위해 그 굴에 들어왔으므로 그를 죽일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였지만, 기름부은 자에게 손을 댄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일행의 결행을 만류하고, 후일에 증거로 삼기 위해 겉옷 자락만을 가만히 벴다. 다윗은 그 후 사울에게 그 옷깃을 보이면서, 자기의 살의가 없음을 사울에게 애소하였다. 사울은 일시적, 또는 감정적이나마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삼상 24장).


 


다윗과 그 일행은이스라엘 사람의 재산을 도적의 손에서보호해 주고(삼상 23:1,25:16,21,27:8) 그 사례로써 식물을 받았으나, 조세와 같이 요구하지는 않았다. 다만 나발의 무례한 거절에 대해서는 하마터면 큰 피를 볼 뻔했다.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의 현명한 조처로 화를 면하고 후에 그녀는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삼상 25:24-34).


 


또 한번은 자기를 추격하는 사울과 그의 군대장관 아브넬이 거느리는 정병 3,000의 진에 잠입하였다가 취침하는 사울을 죽이라는 부하를 타이르고 그의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서 아브넬의 불충을 책망하였다(삼상 26:5-16).


 


그 후에도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어 유대를 떠나 블레셋(가드)으로 다시 건너가 아기스 왕에게로 갔다. 그는 시글락이라는 한 성읍을 얻어 거기서 살았다. 그는 생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하여(구원<舊怨>도 있지만) 아멜렉을 쳐서 우양을 노략질하고도 아기스에게는 유다를 쳤다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또 실수를 했다. 거기서 그는 1년 4개월지냈다(삼상 27장).


 


블레셋 사람과 사울이 길보아에서 싸울 때에, 다윗은 다행히 참전을 면했다(삼상 28:1,2,29장). 이 전쟁에서 사울과 요나단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그 부자(父子)를 위해 애가(哀歌)를 지었다(삼하 1장).


 


(4)유다왕으로써의 다윗:


사울의 죽음으로 다윗은 유대 사람에게 왕으로 추대되어 헤브론에서 살면서 유다를 다스렸다(삼하 2:1-10). 때에 그의 나이는 30세였다(삼하 5:4).


 


그리고 이스라엘의 다른 11지파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우고 2년 간양 자의 사이에 싸움이 계속되었으나, 이 전쟁은 이스보셋이 암살됨으로써 끝났다(삼하 2:12-4:12).


 


다윗의 헤브론 시대는 7년 반 계속 되었으며, 점점 강하여져 여섯 아내로 부터 여섯 아들을 얻었다. 이것은 가정 비극의 원인이 되었다.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아 다윗에게 대립시킨 것은 아브넬의 소위(所爲)인데, 그는 자만하여 사울의 첩과 상통하였는데 이스보셋이 이를 책망하자 아브넬은 다윗에게 충성키로 하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베냐민인을 규합하여 다윗에게 귀순하였다.


 


그의 태도는 야비하나, 다윗을 이스라엘 전국 왕으로 추대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삼하 3:1-21). 요압이 아브넬을 살해했을 때, 다윗은 이를 슬퍼하여 장사하고 애가를 지어 부르니 전 국민의 신뢰감은 더욱 두터워졌다.


 


(5)이스라엘 왕으로써의 다윗:


이스보셋의 사망으로 다윗은 이스라엘 12지파 전체로부터 왕으로 추대를 받음과 동시에, 왕국 확립 사업에 착수하였다(삼하 5:1-5). 당시 이스라엘의 성읍 몇 개는 블레셋과 가나안 사람에게 빼앗겼었다.


 


다윗은 우선 여부스사람이 점령하고 있던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이것을 수도로 하였다. 이 도성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경계에 있으므로 양자의 반목을 완화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 도성이 가나안 사람의 손에서 해방된 것은 남북의 교통을 편리하게 하고, 왕국의 결합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 후 블레셋 사람이 두번씩이나 침입했으나, 다윗에게 완패하여 왕국은 평정되었다(삼하 21:15-22). 나라가 안정되자 다윗은 엘리 제사장 때에 블레셋에게 빼앗겨 기럇여아림에 있는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왔다(삼하 6장).


 


이때 다윗은 소를 잡고 전 국민과 더불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노래 부르며 춤추었다. 다음에는 예배 의식을 성대히 정하고(대상 15,16장)웅장한성전건축을 계획하였다(삼하 7장,대상17장).나라의 안전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또 우상 종교로부터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계속적으로 주변 제국과 싸워 이를 정복하여(삼하8장, 10장, 12:26- 31) 그 국경은 옛날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까지 확장되었다(창 15:18).


 


또한 다윗은 사울의 유족을 찾아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왕자처럼 후대하여 옛 친구의 은혜를 갚는 것도 잊지 않았다(삼하 9:9-13). 다윗 왕권이 욱일승천의 기세로 융성하였으나, 한 큰 범죄로 그의 영혼은 급전직하 흑암의 무저갱으로 떨어지게되었고, 가정은 고통 당하게 되었다.


 


즉, 그가 헷 사람 우리아에 대해 큰 죄를 범했는데, 이것은 대(對) 암몬 전쟁때의 일이다. 다윗이 왕궁에서 낮잠을 자다 깨어나 충장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목욕하는 것을 보고 음욕이 일어 불러다가 간음하여 잉태케했다. 그는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일선에서 우리아를 소환시켜 그 아내와 동침시키려고 했으나, 충성스러운 우리아는 일선 장병을 생각하고 왕의 귀가 권유를 사양했다. 다윗은 음모가 실패하자 요압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리아를 사지에 몰아넣도록 하여 죽게 했다. 그리고 밧세바를 아내로 취하였다(삼하 11장).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비유를 들어 죄를 핑계치 못하게 한 다음, 단도직입적으로 책망케했다(삼하 12장). 이에 다윗은 즉시 진심으로 회개하였다(시 51편). 하나님의 징계는 일부는 직접, 일부는 이후의 사건 중에 당연한 결과로써 나타났다. 불의의 씨인 아들이 죽고(삼하 12:19) 불법적인 욕정과 복수는 그의 가족을 파괴했다.


 


불효한 왕자의 야심은 내란으로까지 발전하고(삼하 13-19장) 이때의 여파는그 후 다시 한번 세바의 반역으로 나타났다(삼하 20장). 즉,이복 남매 암논이 다말을 욕보이고, 다말의 오빠 압살롬은 암몬을 죽이고 도망쳤다. 그 후 부왕의 용서를 받고 귀국한 압살롬은 인심을 얻어 왕인 아비에 반역했므로, 다윗은 예루살렘을 탈출하여 피난생활을 하게 되었고,압살롬은 예루살렘에 입성했다. 그러나 다윗 군과 압살롬의 군이 싸울 때에 압살롬은 상수리나무에 머리가 걸려 살해되었다. 내란이 일단 끝나자, 다윗은 민심을 잘 수습하지 못한 채 환궁하였다.


 


국권이 회복되자,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병원수(兵員數) 증강을 위해 인구 조사를 하므로써 인본주의, 교만죄에 걸려 하나님의 징계를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갓을 통하여 ⓧ 3년 흉년, ⓨ 3개월 대적에게 쫓김, ⓩ 전국에3일간의 온역, 이 세 가지 중에서 택일하라고 할 때 그는 하나님께 징계 받기를 원해ⓩ을 택했다. 그 결과 죽은 자가 7만 명에 달했다.


 


다윗의 치세는 솔로몬의 즉위 확정, 요압과 시므이에 대한 처벌 및 바실래의 후손에 대한 후대를 유언함으로써 끝났다(왕상 1장,2:1-11). 그는 40년 치리했는데, 7년 반은 헤브론에서, 33년은 예루살렘에서 하고, 71세에 사망했다(삼하 5:4,5,왕상 2:11).


 


결론적으로 다윗은 일찍부터 이스라엘의 가인(歌人)으로서 명성을 떨쳤다(삼하 23:1). 히브리 전설에서는 시편의 태반은 상술한 바와 같이 다윗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가 음악을 애호한 것, 수금을 잘 탔다는 것, 성전에서 부를 찬송가를 지었다는 것 등은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다(삼상 16:18-23,삼하 6:5,대상 6:31,16:7,41,42,25:1, 암 6:5,스 3:10,느 12:24,36,45,46).


 


시편 중 73편은 히브리어의 표제로 다윗의 작품이라고 한다. 59편과 7편은 아직 다윗이 사울의 궁전에 있을 때,34˙52˙54˙56˙57˙63˙117의 각 편은 피난의 곤란한 시기에, 그리고 3˙18˙30˙51˙110편 등은 그가 왕이 되어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있을 때의 작품이다.


 


그는 큰죄를 범하여 흑암의 시기도 있었으나, 총체적으로 그의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삼상 13:14)이라고 부르기에 합당하였다. 그는 우리아의 일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왕상 15:5). 다윗은 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었다(행 13:36).


 


그가 인류에게 준 감화는 너무나 크다. 그의 시편은 몇 세기에 걸쳐 그리스도 교회에서 애창되어 그의 영적 영향이 후대에 까지 미치고 있다. 다윗이야 말로 다음에 오신 `다윗의 자손'임과 동시에 `다윗의 주'이신 분을 위해 그 조상들의 계보 사슬 중에서 특히 중대한 고리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마 1:1,22:4145).


 


<참고>약속된 크신 임금, 즉 메시야도 역시 `다윗'이라고 불리운다(렘 30:9,겔 34:23,호 3:5). 오래전부터 메시야의 나라도 `다윗의 나라'라고 불리워 오고 있다(막 11:10).


 


즉, 거기서 주님은 `다윗의 위'에 앉아 다스리며(렘 22:2,4),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계 3:7). 이 모든 표현은 다윗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영원하고 한량없으신 자비를 말하며(사 55:3,삼하 7:12), 곤고한 날에 이스라엘의 의지와(시 89:3,4,20,35,49,렘 23:5),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성(행 2:29)을 말하며, 특히`다윗의 자손'이라는 이름(마 1:1,막 10:47,눅 20:41)으로도 발견된다.


 


바벨론의 포로 이후 메시야의 내림의 간절한 소망을 품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야를 다윗의 자손으로서 다윗의 왕국을 재현할 이상의 왕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또 구약에 예언되어 있었던 것이다(삼하 7:12,13,사 9:7,16:5,렘 23:5,30:9,겔 34:23,24,37:24).


 


이와 같은 배경에서 메시야는 다윗의 가계(家系)와 연결되는 관계상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그러므로 `다윗의 자손'이란 메시야의 칭호이다. 마태의 계보(마 1:1)는 물론 바울도 로마서 1:3에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혈통(씨)에서 나셨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이라고 자칭한 일은 없지만, 최후의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소경 바디매오가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부르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으셨다(막 10:47). 메시야인 예수를 묘사하고 있는 마태복음에는 계보 이외에도 이 호칭이 눈에 띄게 많다(9:27, 12:23, 15:22, 20:30, 31, 21:9, 15).


 


또, 주의 통치에 대하여 예루살렘 거민 중에서 가장 약한 자가 그날에는 다윗과 같게 된다는 예언도 있다(슥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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