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리모델링, 그리고 미뤄진 휴가 여행」
그동안 바쁜 일정을 보내면서 한시도 쉴 새 없이 지내다 보니, 무더운 한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지냈다.
그러다가 큰마음을 먹고 모든 일정을 뒤로한 채, 내일(2026. 9. 8.) 춘천 인성병원에 입원해 계신 변 목사님을 병문안한 다음 속초로 가서 최소 2박 3일 또는 이번 주간동안 휴가도 겸해 좀 쉬고 오려고 계획을 세웠다. 오늘 임원회의에서 임원진에게도 그렇게 알렸다.
그런데 지난 8월 27일 작은 교통사고 이후 치료받고 있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던 중, 허리 통증 때문에 X-ray를 여러 장 촬영하였다. 검사 결과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고 하여 C-arm(영상증폭장치) 주사치료와 물리치료를 받았다.
나의 주치의인 병원장은 2~3일 동안 어떤 운동도 하지 말고 무리한 움직임도 삼가라고 하였다. 또 목요일에 다시 와서 C-arm 주사를 맞아야 하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허리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나니 오래전 일이 생각났다.
1980년대 후반, 기도원 공사를 하면서 산속에 건축을 하고자 하였지만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은 곳이라 자재를 운반할 수도 없었고, 레미콘 차량도 올라갈 수 없어 공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 불가능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어떤 난관이 있어도 헤치고 나가는 것이 믿는 자라는 생각으로 산속에 자재를 올리기 위한 4륜 덤프트럭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당시 국내에는 그러한 차량이 없었다.
“없으면 있게 하라.”
그래서 내가 직접 폐차장과 장안평을 찾아다니며 부속을 모아 난생처음 4륜 덤프트럭을 제작하였다.
그 덤프트럭으로 모래와 시멘트, 자갈 등 건축자재를 산 밑 도로에서 산속 건축현장까지 실어 날랐다.
그다음에는 이 자재들을 섞어 줄 자동 믹서기를 만들었다.
전국의 건축현장에서 사용하다 버린 수동 믹서기를 구해다가 엘프 자동차 엔진을 연결하였다.
그리고 그 믹서기에 자갈과 모래, 시멘트를 넣고 자동차 엔진의 동력을 이용하여 버무렸다.
그러나 믹서기에 건축자재를 삽으로 떠서 담는 일이 너무 힘들었고, 작업량도 얼마 되지 않아 지치고 말았다.
그래서 또 연구하다가 포크레인으로 작업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업에 종사하는 성도에게 부탁하여 폐차된 포크레인 두 대를 구해 기도원으로 가져왔다.
이때도 내가 직접 제작한 덤프트럭이 큰 역할을 하였다.
폐차된 포크레인 두 대를 분해한 뒤 사용할 수 있는 부품들을 골라 다시 조립하여 한 대의 완성된 포크레인을 만들었다.
내 생애 포크레인을 만들어 사용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일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였다.
2대를 분해하여 만들다 보니 2가지의 색상이 되었다.
사람이 들어가서 운전할 좌석은 사방을 볼 수 있게 개방 하였다.
이 장비들이 길도 만들고 건축도 하므로 큰 역활을 하는 도구가 되었다.
참조 :
http://www.pdh.kr/pdh_board/board.php?board=gallery&page=2&command=body&no=4
그리고 버무린 시멘트를 건축현장 위쪽으로 운반하기 위한 펌프대신 시멘트를 부어 올릴 수 있는 승강기도 직접 만들었다. 여기에 자동차 엔진을 달아 그 동력을 이용하여 시멘트를 바가지에 부어서 아래에서 위로 올려지며 자동으로 부을 수 있게하여 쉽게 공사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당시에는 필요한 장비가 없으면 직접 만들고 고쳐 가면서 산속에 길을 내고 기도원을 건축하였다.
참조 :
http://www.pdh.kr/pdh_board/board.php?board=gallery&page=2&command=body&no=5
그런데 그때 너무 무리를 하였는지 척추 4,5번에 이상이 생겼고 협착증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크게 불편하지 않아 오늘날까지 지내왔다.
그러다가 2024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김포 사택에서 세컨드하우스인 보은 촌집으로 6,000여 권의 책을 여러 차례 옮겼다.
참조 : http://www.pdh.kr/pdh_board/board.php?board=gallery&page=2&command=body&no=6
그때 다시 무리를 했던지 오른쪽 어깨에 이상이 생겼고, 보훈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결과 힘줄이 끊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잠정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12월 5일 정밀진료를 받은 후 수술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하지만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고, 그 후 곧바로 교계의 최고 원로이신 J 목사님과 한기총 회장 등 교계 대표들의 비상회의가 안양의 ㅇ교회에서 열리게 되었다.
나는 병원 예약을 뒤로 미루고 그 회의에 참석하였다.
그 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계엄령에 대한 교계의 입장을 성명서로 발표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 성명서를 내가 작성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몸은 아팠지만 하나님의 일과 나라의 일이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결국 그 일을 맡게 되었다.
다음 날 J 목사님이 박주현 변호사와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나에게도 함께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여 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마침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박주현 변호사에게 이번 성명서를 만드는 데 도움을 달라고 요청하였고, 흔쾌히 승낙해 주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성명서는 2024년 12월 7일 여러 언론을 통해 전면으로 발표되었고, 이후 2025년 6월 3일까지 모두 21번의 성명서를 발표하게 되었다.
한편 보훈병원에서 MRI 등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또 다른 곳에도 이상이 있을 수 있으니 추가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의 검사를 거절하였다.
또 다른 이상이 발견된다 해도 당시에는 계속 성명서를 만들어야 했고, 수술을 받으면 당분간 손을 사용할 수도 없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병명이 발견된다면 앞으로의 일을 그르칠 우려가 있기에 나는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검사와 수술을 미루었다.
통증이 심했기에 의사에게 진통제라도 처방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의사는 이 병은 진통제로 견딜 수 있는 병이 아니라며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그러나 나는 진통제를 처방해 달라고 고집하여 결국 3개월 분량의 진통제를 처방받았다.
당시에는 그 사태가 1~2개월이면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그때 시작된 상황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때 미뤄 두었던 어깨 수술을 2025년 3월 10일에 받았다.
수술 후 이 병원에서 몇 개월 동안 통원치료를 받았었기에 그러한 내용을 주치의에게 간략히 설명하였다.
그러자 나의 주치의인 병원장은 자기 교회 목사님도 산속에 기도원을 건축하면서 무리하시는 것을 보았다며, 나에게도 당분간은 무리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 덮어 두고 넘어갔던 몸의 문제가 이제야 다시 나타난 것이다.
이번 검사에서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이번 기회를 통해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내 몸을 ‘리모델링’하시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이제는 치료에 임하려고 한다.
그동안 하나님의 일과 나라의 일을 앞세우며 몸을 돌보는 일을 뒤로 미뤄 왔지만, 이번에는 치료를 제대로 받아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내일 떠나려고 했던 춘천과 속초 여행은 아쉽지만 당분간 미룰 수밖에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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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위 일정으로 약속을 취소하거나 변경하였던 분들께서는 다시 일정 조정을 원하시면 연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동호 목사
“2026년 9월 7일 늦은 저녁에 기록하다.”